너는 우리와 달라

이명희 사회에디터

나이 들면서 깨닫는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민망한 일은 스스로 취향이라고 여겼던 그 ‘탁월한’ 선택들이 사실은 ‘젊음’에 기댄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행에 관한 것이 거의 그렇다. 나는 여행에서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를 따르려고 했다. 1. 최대한 멀리 가되 그 나라 국적기를 이용한다. 2. 관광객(나도 관광객이었는데)이 가지 않는 곳 위주로 동선을 짠다. 3. 도시 간 이동은 야간 버스나 기차를 이용한다.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명희 사회에디터

음, 아무래도 그건 취향이라기보다는 단지 젊어서 그런 것이었다. 휴가철이면 탈출해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어딘가로 떠난다든가, 패키지여행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 전부 말이다.

중년이 된 지금은 말이 통하고 비빔밥을 주는 국적기를 선호한다. 장거리 유럽 여행보다 “가까운 일본이 최고”라는 부모님의 일리 있는 취향에도 격하게 공감한다. 하다못해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흉봤던 패키지여행을 가라고 떠민다.

음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마신 음료는 콜라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환타는 별로였다. 내가 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수박화채에도 환타를 넣곤 했다. “이래야 화채가 맛있고 색도 예쁘다.” 언젠가부터 나는 코가 찡한 콜라 대신 밋밋한 환타를 고른다. 예전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나물을 좋아하고, 김치찌개보다는 된장찌개가 더 좋다.

취향, 구별짓기 넘어 배제로 이어져

취향은 이처럼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고? 지금까지 그래왔고,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그 으스대는 취향도 나중에는 비웃는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요즘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중장년은 유행에 뒤떨어진 취향을 섣불리 드러냈다가는 한물간 사람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나는 것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취향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같은 취향의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기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알고보면 그들이 읽고 있는 책 때문이다. 두 사람은 책 이야기를 주고받다 서로의 ‘괜찮은’ 취향을 알아채고 호감을 갖는다.

그렇다고 취향이 사람들을 묶어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갈라놓기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통해 취향에 계급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취향은 그 사람의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라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등을 말한다. 결국 취향은 개인 차이로 용인되는 듯하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하면서 ‘구별짓기’를 정당화해간다는 것이다. 아비투스 습득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할 순 없지만 ‘나’보다 ‘우리’라는 정체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그의 주장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많은 구별짓기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가볍게는 입맛 취향 대결을 보라. 탕수육 소스를 놓고 ‘부먹(부어 먹기), 찍먹(찍어 먹기)’으로 시작된 논쟁은 ‘민초(민트와 초콜릿) 대 반민초’ ‘물복(물렁한 복숭아), 딱복(딱딱한 복숭아)’으로까지 이어졌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입맛 논쟁은 ‘취향 존중’으로 웃어 넘기면 그만이겠지만, 취향에 가치 판단이나 집단의 정체성이 들어가면 불협화음이 커진다. 상대방에게 취향을 강요하거나, 편을 나눠 상대를 헐뜯는 사회 현상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취향 편히 드러낼 ‘사다리’가 필요

이때 ‘취향’은 부르디외의 주장처럼, ‘계급’의 지표로 기능한다. 성별, 인종, 민족, 출신 지역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입장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하며 충돌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너는 우리와 달라’라는 배제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권이 불붙인 성차별이 민심을 갈랐다고 한다. 집단 정체성이 상충하면서 누가 특권을 덜 가지고 있는지, 더 아픈지를 겨루는 제로섬 경쟁을 했다고 해야 할까.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검열은 더 엄격해졌다.

선거는 끝났다. 사회 갈등이 더 확대되기 전에 이를 바로잡는 것이 새 정부가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서로 독기를 내뿜지 않고도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