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약속, 국민통합과 협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400만 유권자 가운데 3400만명이 넘게 참여한 대선이 불과 24만여표 차이로 결정되었다. 한국 사회가 둘로 쪼개졌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세대, 지역, 젠더 등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다는 우려도 많다. 당선인이 국민통합을 당선소감의 첫머리에 올린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리라. 당선인에게 쏟아지는 고언들도 하나같이 국민통합으로 수렴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러나 국민통합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감대가 얼마나 형성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다 보니 구체적 방안에 이르러서는 백가쟁명이 따로 없다. 상반되는 주문도 국민통합의 이름으로 제안되곤 한다. 그런데 국민통합은 이미 대한국민이 헌법으로 맺은 약속이자 국가권력의 과제다. 다만 헌법이 잘 지켜지지 않을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을 가진 개인으로 구성되는 공동체에 갈등은 그 자체로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갈등이 없는 상태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어떻게 모든 세대, 지역, 젠더가 같은 이념과 행동양식으로 일체화될 수 있겠는가. 예컨대 뇌물죄로 복역하는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통합의 방안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건은 갈등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관리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와 방법 및 기본원리를 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국민통합은 아무런 갈등이 없는, 모두가 한 몸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획일화된 상태가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상호 존중하는 조건 속에서 평화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조화롭게 관리하는 다원화된 과정이다. 헌법은 다원사회에서 모두가 공존·공생·공영하는 공준을 우리 대한국민이 합의해 놓은 기본법이다.

헌법은 이번 대선의 국민통합적 의미를 이미 정리해 두고 있다. 바로 권력의 분립과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공화제의 원리에 입각한 협치이다. 지난달 이 칼럼에 헌법적 국민통합의 과제인 협치의 다양한 차원을 당·정·청관계, 여·야·정협의회와 의회제 및 국민공론제의 방식으로 소개한 바 있다.

대선은 협치의 핵심요소인 삼권의 하나인 행정권을 담당하는 정부 수반을 국민대표로 뽑는 데 그 본질적 기능이 있다.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대통령이 가지지만 이 지위는 의전적·상징적인 것에 불과하고 권위주의체제처럼 다른 권력보다 우월적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을 무조건적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짐(朕)이 곧 국가”임을 몸소 웅변하다 단두대에 올려졌던 전근대적 발상의 유산에 불과하다. 헌법은 국민통합의 과제를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과 그 운용에 관여하는 정당 및 국민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간의 분립과 상호 견제 및 균형을 통해 갈등을 질서 있게 관리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수행하는 여러 권력 중 하나를 담당하는 지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권한의 규모나 영향력이 입법권이나 사법권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법률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제한적이다. 협치를 명령하는 헌법에서 정부의 조직과 기본적인 인사마저도 국회의 동의나 입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사법권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법적 분쟁을 해소하여 대통령의 정부가 법치행정에 철저하도록 통제함으로써 국민통합에 기여한다.

한편 당선인이 받은 유권자의 표 하나하나가 가지는 헌법적 의미에 대해서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권자의 한 표는 단일한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 청와대 해체, 사면 등 당선인이 내건 모든 공약에 1600만을 넘는 지지 국민이 모두 동의했겠는가? 국민대표를 뽑는 선거는 ‘의견’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라기보다 ‘권력’의 대표를 뽑는 과정이다. 아무리 표차가 적었더라도 대통령이 되면 그 권한을 100% 행사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주어진 권한을 자신의 뜻대로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끝난 후 국민의 여론은 수시로 바뀐다. 지지자들이 반대자로 바뀔 수 있고 그 반대도 다반사이다. 결국 대통령은 수시로 변하는 여론에 반응하면서 헌법이 부여한 국민통합의 과제를 여당은 물론 야당,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적 선택이 어떠했건 국민과 정당들도 선거의 헌법적 의미를 확인하면서 협치의 한 축으로서 소임을 다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당선인을 포함하여 모두가 한 뼘의 여유를 내어 협치를 통한 국민통합을 명령하는 헌법을 일독하면서 각자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부터 실천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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