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된 세계관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전의 선거와 달리 여러모로 감회가 드는 선거였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유달리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나와 다른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끼리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분명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 대화가 채 성립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빗겨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대화를 시도한 끝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관에서 살고 있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흔히 게임이나 만화, 소설 등에서 세계관이란 작품 속 세계의 배경과 질서,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 전반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해리포터>의 세계관은 ‘마법’이라는 질서를 통해 마법세계와 머글들의 세계가 나눠지고, 마법 세계는 또 호그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교육기관과 마법부 등 그들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법칙들이 세심하게 갖춰져 있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도 소설 바깥의 현실 세계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세계는 마법이 존재하고 이종족들이 존재하는 곳인 만큼 사람들의 사고관도 ‘마법’이라는 요소를 바탕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세계관은 세계의 구조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사이를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런데 정치 이슈에서 고작 다른 정당, 다른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이 세계관의 차이까지 느끼게 하는 건 기묘하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사람은 같은 세계에 몸담고 있고, 같은 질서 안에 놓여 있으며, 같은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더라도 같은 세계 속에서 느낄 유대감, 동질감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제 더 이상 타자는 이해 불가능한 대상으로 변모해간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와 남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분화된다.

이제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신념이나 혐오, 또는 광신이나 이해관계만으로 얘기하긴 어렵다. 서로의 갈등이 분화되는 까닭은 정치인을 비롯해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발언과 오염된 뉴스들이 그들끼리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골몰하는 탓이다. 최근 뉴스는 더 이상 옳고 그름, 정의와 비정의를 단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말하는 주장이 ‘옳은 세계’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상대의 정보가, 주장이 틀렸다고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서 내 정보는 완전무결함을 이야기한다. 주장이 나오기까지의 흐름과 역사적 맥락은 완전히 제거한 채 오로지 자기가 발언한 이야기나 주장의 문구 그 자체에 매몰된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의 세계가 되어 지지자들의 믿음을 보충하는 근거로 작동하고, 지지자들의 지지는 다시 손쉽게 주장의 도구가 된다. 결국 아무런 근거도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의 세계는 몇몇의 주장과 지지자들의 지지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정치적 이슈의 핵심으로 부상해버린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될수록 이제 세상은, 그리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끊임없이 분화될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에 관광객이 될 수는 있지만 세계의 주민이 될 수는 없다. 분화된 세계관을 다시금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