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과 평등의 대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한 소설가가 카페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 하잖아요.” 비판을 의식해 자기 소설을 방어하려는 모양이다. 그래, 결정적인 한 장면, 에피파니, 와우 포인트가 없으면 소설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곤 하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한 방’일 때가 많으니까. 그런데 소설가는 일부러 그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씌어진 것 같잖아요. (…)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에 찜찜함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유난스러워보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찬양하고 드높이기 위해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것. 한 부분만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나머지 요소를 희생시키는 것. 소설의 모든 문장에 공평한 몫을 분배하지 않는 것. 그거, “좀 비민주적이지 않아요?”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데 감동적이고 우스꽝스러운데 살벌한 이미상의 소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문학과사회’ 2022년 봄호)에서 나오는 대화다. 이 장면은 ‘좋은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흥미로운 답변이지만, 이미상의 소설에서 이것은 소설미학에 그치지 않는다. 그냥 네가 못하는 거 아니냐는 상대의 마땅한 물음에 소설가는 덧붙인다. “못해서 못하니까 좋은 거예요. 무능해서 귀한 거예요.”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거’라고 말하면 작가로서 면이라도 살 텐데 ‘못해서 못하는 거’가 더 낫다는 궤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설 속 문장들 간의 민주주의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어쩌면 인종적, 젠더적, 신체적 소수자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평등’ 이데올로기에 관한 유비로도 읽힌다.

이는 중심 인물인 모래 고모라는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다. 집안의 골칫덩이이자 덜떨어지는 막내딸.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살며 무상으로 가사와 간병 노동을 제공하고도 끝까지 용돈 말고 자기 재산은 갖지 못한 사람.”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대신 도맡지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저 멀리 가출해서 모두가 쉬쉬하는 죽음으로 생을 끝낸 사람.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사고뭉치 조카에게 비밀스럽게 그 역할을 승계하는 비가시화된 존재. 어떤 베풂도 서로의 필요와 보상을 주고받는 평등한 교환으로 ‘퉁 치는’ 이 관계는 우리 사회에서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차별적으로 배분되기에 유지되는 표면적 평등이 누군가의 (존재)노동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묻는다. 이미상 소설의 다른 인물이 말한 적 있듯, “누군가는 평등의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요.”(‘여자가 지하철 할 때’) 다만 이 소설은 그 존재를 불쌍한 것으로 비극화하지도, 선한 것으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고모의 긴밀하고 비밀스러운 승계에서 소외당한 조카의 눈으로 이상하고 서늘한 아우라를 부여하여 그 안에 함께 휘감기게 한다.

정치인이 두 발 벗고 혐오를 선동하고 장애인과 시민이라는 허위 구도를 만들어 온 국민을 적대적으로 경쟁시키는 말에 매일 습격당하는 요즘, 그렇게 선별된 시민들로 이루어진 ‘안전’한 세계가 기대하는 ‘평등’의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을까. 이 소설의 알레고리를 빌리자면, 장애 아동의 콧물로 목욕탕이 더러워진 것을 알고 모두가 엉덩이 주변에 물을 튀기며 빠져나오는 동안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다음에 그어질 적대적 분할선에서 당신과 나는 탕 밖에 있게 될까, 아니면 안에 남아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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