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만큼만 쇄신할 텐가

양권모 편집인

대선 승패를 가른 24만7077표(0.73%포인트)는 승자보다는 패자에게 실로 마약과 같은 지표다. 사생결단의 진영 대결이었기에 더 그렇다. ‘석패’에 집착하다보면 종국에는 대선 결과를 ‘운칠기삼’으로 치부하거나,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를 구가하기 십상이다. 그러고선 반성과 쇄신을 회피할 구실로 삼는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전국 단위의 선거, 그것도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이토록 안온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필수적인 대선 평가 작업도 안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패인 평가를 외면하니 반면교사 삼을 교훈이 나올 리 없다. 가뭄에 콩 나듯 불거진 대선 패배에 대한 쓴소리는 ‘배신자’ 공격으로 초장에 제압됐다. ‘배신자’ 딱지를 붙여 성찰 요구를 차단했다. 사실 ‘졌잘싸’로 만족하면 패배를 성찰할 까닭도 없어진다. ‘일사불란’과 ‘이재명 지키기’가 지상 목표가 된 상황에서 대선 패배를 복기하고 책임을 따지는 건 기득권에는 한없이 불편한 사안이다. 결국 반성도, 쇄신도, 변화도 0.73%만큼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흐른다.

0.73%포인트 차이에 기대 애써 외면하지만 실로 ‘거대한’ 패배다. 국회에서 절대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지방권력까지 압도적 우위를 보인 민주당 정권이 5년 만에 실권했다. 주권자가 촛불 들고 탄핵한 세력한테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이다. 정권교체 ‘10년 주기’마저 깨진, 치욕적 교체다. 비록 0.73%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주권자는 민주당 정권 5년을 심판했다. 대선 결과는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는 민주당의 패배이다. “0.73%의 패배가 아니라 이재명의 패배, 민주당의 패배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박용진 의원). 필히 ‘0.73%’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인이 겸손을 벼려야 할 지점이지, 민주당과 이재명 대선 후보가 자성 없이 ‘고개를 쳐들’ 근거가 아니다.

0.73%의 격차에 안주하니 대처도 안이하다. ‘질서 있는 수습’으로 쓰지만 당 쇄신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선 패배 닷새 만에 결산을 마치고 윤호중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윤호중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승진시켜 6월 지방선거를 맡겼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이 갖고 있는 진영과 패권 정치의 합작물”(노웅래 의원)이라는 지적에 백번 공감한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이재명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박홍근 의원이 선출됐다. 대선 전과 후, ‘송영길’이 ‘윤호중’으로, ‘윤호중’이 ‘박홍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효를 다한 ‘586 정치’는 이리 건재하다. 악성의 ‘팬덤 정치’도 패장인 ‘이재명’으로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것 빼고는 여전하다. ‘검수완박’을 부르짖는 것도 한결같다. 지난해 4·7 재·보선 참패 뒤에도 ‘완수하지 못한 검찰개혁’을 패인으로 지목하고, 그 길로 질주했다. 집값 폭등에 절망하고 내로남불과 오만에 분노한 민심을 오독한 결과가 정권을 내주는 대선 패배를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도 반면교사도 안 하고 있다. 외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차출론이 왁자하다. ‘책임정치’를 희화화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 뒤 국정수행을 ‘잘하지 못할 것’이란 답변이 더 많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의 일천한 정치 경력과 빈약한 정책 능력은 대선 기간 목도한 바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잘할 것이란 기대에서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의 무능과 위선, 오만을 심판하기 위해 정권교체를 택한 유권자가 많다. 민주당이 켜켜이 덧씌워진 무능과 위선, 독선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6월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쇄신과 변화 없는 민주당의 존재는 윤석열 정부의 잘못을 호도하는 알리바이가 되기 십상이다. 역대로 무능하거나 무도한 정권에 ‘야당 복’만 한 방편이 없었다.

정권을 내줬지만 민주당은 세다. 172석 야당이 반대 스크럼을 짜면 윤석열 정부는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민주당의 호언대로 ‘식물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다. 이토록 막강한 ‘야당 권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윤석열 정부의 권력남용과 반개혁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야당으로 거듭나는 데 쓰인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다시 열릴 것이다. 다만 그 견제와 반대가 정권을 교체한 민심에 맞서는 태도로 비치면 망한다. 반대와 싸움만 해대는 야당이 아니라 잘 싸우는 야당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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