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윤석열’이 기준인 내각 인선

양권모 편집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서울 통의동 제20대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3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서울 통의동 제20대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3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실로 인사가 만사(萬事)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45%)가 긍정(42%)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이유로는 ‘인사 잘못’(26%)이 첫 순위에 꼽혔다. 이런 추세라면 ‘레임덕’이 아니라 ‘취임덕’에 빠질 판이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19명 중에서 온갖 ‘아빠 찬스’와 특혜, 대형 로펌과 사외이사 회전문, 이권 개입, 병역 면제, 세금 탈루, 위장전입 등 크고 작은 의혹이나 추문에 휩싸이지 않는 경우는 두세 명뿐이다. 인맥과 학맥, 경력을 고리로 세습적 ‘찬스’와 특혜를 누리는 기득권층의 부조리한 실상이 매일 연속극처럼 펼쳐지고 있다. 윤 당선인의 첫 인사에 대한 비등한 실망 여론은 단지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비리나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새 정부의 비전이자 얼굴이어야 할 내각 진용이 희망과 감동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19명 중에서 서울대 출신이 11명, 고시 출신이 10명에 달한다. 인선 기준으로 내세운 전문성과 능력을 학력과 학벌, 시험성적으로 매긴 꼴이다. 영남(7명)과 서울(5명) 출신이 압도적이고, 여성은 3명뿐이다. 평균 연령이 61세에 달하는 늙은 내각에서 공교롭게도(?) 윤 당선인과 동갑내기인 1960년생이 제일 많다. 남녀 동수 내각이나 20·30대가 과반인 선진 나라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은 ‘영남이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한 60대 남성’으로 요약된다. 윤 당선인(서울 출신·서울대 법대·60대·남성·고시)과 스펙이 빼박이다. 자신이 잘 아는 또래 전문가들만 찾았다는 얘기다. 장관 후보자들의 평균 재산은 38억원에 달한다. ‘강부자’(강남 부자)로 불린 이명박 정부 1기 내각보다도 많다.

지역, 세대, 성별, 학력, 직능, 계층에서 이토록 다양성이 허물어진 내각은 처음이다. ‘무지개 내각’은 고사하고 칙칙한 단색의 내각이다. 동종교배 집단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집단 사고에 빠져 반대 의견에 귀닫고, 자신들이 옳다는 독선만 강해지기 때문이다.

안배와 통합의 가치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만한 전문성과 실력 있는 인물이라면 그래도 좋다. 인선의 윗길 기준에 윤 당선인과의 끈끈한 인연이 자리하면서 능력주의 명목마저 길을 잃었다. 보건복지부, 통일부, 행정안전부, 법무부 장관에 수십년 지기와 최측근이 지명됐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처장에는 각각 죽마고우와 절친이 내정됐다고 한다. 대통령 친구들이 이리 많이 고위직에 발탁된 전례가 없다. 벌써 ‘인사 사유화’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서오남’(서울대·50대 이상·남성)+당선인 인연의 교집합을 찾다보면 인재풀은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성의 기준도 왜곡되기 마련이고, 통합의 인사는 더더욱 하기 어려워진다. 교집합에 들어 발탁된 장관 후보자들이 과연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인지도 의문이다. ‘40년 지기’라는 점 외에는 달리 인선 배경을 찾기 힘든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증좌다.

여전히 남루하지만 이만한 균형과 통합의 인사 가치를 세우기 위해 얼마만한 피땀눈물이 필요했던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은 ‘내 사람’ 중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안배와 균형을 배척하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1기 내각 인사 때도 특정 대학 편중, 측근 배치, 회전문 인사 등이 논란이 됐다. 당시 박근혜 당선인 측도 “기계적 배분보다는 전문성과 능력을 인선의 제1 기준으로 삼았다. 권력기관장과 청와대 비서실, 일선 부처 간부 인사까지 하고 나면 대탕평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지금 윤 당선인 측의 방어논리와 똑같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이후 인사는 대탕평은커녕 편중과 차별 인사가 악성으로 진화했다. 누적된 인사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귀결됐다.

대통령직인수위는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트로피 인사는 안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향후 차관급, 청와대 비서관 인사 등에서도 능력주의를 앞세운 윤석열식 마이웨이 인사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보여주기식, 나눠먹기식 인사를 하라는 게 아니다. 당선인의 사적 인연이나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 폭넓게 인재를 구하면 충분히 경륜과 능력 있는 사람으로 균형 잡힌 인사를 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당선인 주변 사람들에만 꽂히는 ‘부족 인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인사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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