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망했다,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하자

양권모 편집인

처음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에게 국민통합정부 참여와 정책연대를 제안했다고 했을 때다. 민주당과 우리공화당의 아득한 거리, 믿기지 않았다. 정치연합과 연립정부가 보편화된 유럽 국가에서도 극단 세력과의 연대는 금칙이다. ‘심상정’(정의당)에서 ‘조원진’(태극기부대)까지 아우르는 통합·연대라면 정치사를 새로 써야 할 사건이다. 가치와 이념, 정체성은 몰각되고 날것의 승리지상주의만 활개 치는 선거판이다. ‘닥치고 정권교체’ 못지않게 ‘묻지마 반윤연대’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야권발로 맹목적 단일화 게임이 막판 대선판을 덮쳤다. 충격적인 스캔들과 언행이 터져도 요지부동이던 박빙의 구도가 단일화 이슈에 출렁이고 있다. 가뜩이나 정책과 비전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공약 검증은 턱없이 부실한 상황이다. 단일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남은 기회마저 빼앗겼다. 오늘 저녁 마지막 TV토론도 단일화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이다. 대통령 선거에만 3번이나 출마하는 ‘안철수’가 20대 대선에서 키맨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정체성도, 정책 공유도 없이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해 안 후보 끌어들이기(사퇴 vs 완주)에 목매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안철수의 꿈”(이재명)인 정치교체를 내건 것도 실은 단일화 게임의 대응 측면이 크다.

이대로 4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제3후보 공간은 형편없이 쪼그라들 것이다. 안 후보의 득표율은 2017년 대선(21.41%)과는 비할 바 없을 터이다. 심상정 후보도 마찬가지다. 양대 정당 후보가 비호감이면 제3후보의 영역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반대다. 제3의 선택을 봉쇄하는 단순다수대표제 때문이다. 사생결단식 진영 대결 속에서 가혹한 양자택일만 놓여 있다. 중도층에게 ‘차악론’이 유일한 투표동기가 되는 것만큼 이번 대선의 최악 상황을 웅변하는 것도 없다. ‘누구 찍으면 누구 된다’는 사표론에 포획되어 ‘좋은 후보를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해야 한다. 참으로 우울한 대선이다.

‘오래된 미래’인 결선투표제를 상상하자.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후보들은 단일화와 사표론 압박에 시달릴 필요 없이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다. 소수 정당과 진보정당 후보의 경쟁 운동장도 확보된다. 유권자들은 사표론에서 벗어나 정책과 이념 선호에 따라 진실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밀실 흥정과 벼랑 끝 협상에 의존하는 단일화가 아니라, 결선투표 과정을 거치면서 투명하고 명분 있는 정치연합이 이뤄질 수 있게 된다. 결선투표제는 이렇게 ‘다당제를 가져오면서 정당 간의 연합 가능성을 높인다’(듀베르제 법칙).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대통령 후보의 검증·평가·결정 과정이 너무 허술하다. 단일화나 네거티브 ‘한 방’에 휘청거리는 도박판같은 대선이 전개되고 있다. 결선투표제로 선거를 두 번 치르게 될 경우 리더십 검증과 평가의 부실을 막을 수 있을 터이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후보 TV토론은 치열한 정책 논전과 무한 검증의 장이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을 확보한 당선자가 나오게 해 소수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당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결선투표제는 공론화 과정을 통한 논의와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도입할 수 있다. 개헌 같은 지난한 과제보다 훨씬 도입이 용이하고, 더 민주주의에 부합한다는 대의도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95개국 중 89개 나라에서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양대 정당, 여야의 유불리도 딱히 갈리지 않는 사안이라 타협과 절충의 여지도 총선 선거제도보다 높다. 역대급 비호감, 혐오 대선을 치르면서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이 부각된 상황이 기회다. 민주당의 정치개혁안에도 결선투표제가 들어 있다. 약속대로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추진해 매번 반복되는 대선의 난장을 끝내기를 바란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비호감, 혐오 대선에서 교훈을 얻어 결선투표제 도입의 당위에 공감이 마련된다면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하다.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27년 대선도 마찬가지 모양일 게 뻔하다. ‘차악론’과 ‘사표론’의 찝찝함을 안고 유권자들은 다시 투표장으로 향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이번 대선 ‘과정’은 망했다. 5년 후 대선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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