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한때 최고의 번화가…그곳서 소환한 빛바랜 추억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서울 종로2가

1971년 종로거리 | 2021년 종로거리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 종로거리 | 2021년 종로거리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의 사진은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서울 종로2가의 모습이다. 종로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길이었고, 이 길을 따라 육의전을 비롯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남대문에서 뻗어온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곳에는 도성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큰 종을 단 누각이 있었다. 이것이 종루이며, 종로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종루는 나중에 보신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의 사진 오른쪽의 2층 기와집이 보신각이다.

종로는 조선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왕이 행차할 때 이용하는 길이었다. 1899년 종로에 철로를 깔고 전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도 고종이 편하게 홍릉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시민의 발 역할을 하던 노면전차는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1968년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지하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종로에 지하철을 건설하자는 움직임은 1930년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서울지하철 1호선은 1970년 착공하여 1974년 8월 개통하였다. 1971년의 사진에는 “74년에 탑시다. 서울지하철”이란 문구가 걸려 있는 임시육교가 보이며, 오늘날과 다르게 공사장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어 사람과 차가 통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 왼쪽의 ‘간첩 신고는 113’이란 간판이 옥상에 설치된 노란 건물은 화신백화점이다. 이 백화점은 친일파인 박흥식이 1931년 설립했으며, 건물은 1937년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새로 지었다. 당시 한국인에 의해 건립된 최대의 건물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갖추어져 있었다. 이 건물은 1987년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었고, 그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9년 현재 사진의 거대한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이에 비해 길 건너편 관철동 쪽은 50년간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1971년 사진에서 ‘고려당’ 등의 간판이 보인다. 고려당은 1945년 이곳에 제과점을 열면서 “아침 식사는 빵으로”라는 문구를 내걸었다고 한다. 밥 대신 빵이라는 새로운 식생활도 종로에서 시작된 것이다. 고려당 근처에는 1907년 생겨난 ‘종로서적’이 있었다. 1970~1980년대 젊은이들이 약속 장소로 가장 선호하던 곳이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종로서적이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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