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남바리

고수만 알고 먹는다는 고수나물. 식물시장에 연줄이 있는 후배에게 부탁해 구해다가 밭에 심었다. 쌉싸름한 맛의 방풍나물도 한판 구해서 같이. 올 초에 스님 동생이 하룻밤 자고 가면서 산나물 예찬을 어찌나 펼치던지. “뭘 먹는 걸 탐하고 그래.” “형님은 생각이 짧으시오. 혼자 살면서 아파봐. 누가 돌봐줘요?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지.” 옳다구나 맞아. 삶고 데친 나물 반찬은 명절에나 맛보는데 샐러드식으론 언제나 나물 맛을 볼 수 있겠네. 나물 반찬만큼 무침 요리가 먹고 싶을 때도 있어. 가까이 가자미 회무침을 잘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친구들과 가끔 방문. 회를 쳐서 먹고 식초를 가미한 회무침으로 먹기도 해. 무와 미나리를 넣고 지리탕을 끓이면 이렇게 봄비로 쌀쌀한 날엔 아랫배를 덥히고 역병의 인후통도 가라앉을 게야.

백석 시인의 가자미 사랑을 당신은 아는가.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자미,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반찬 친구’라는 뜻의 ‘선우사’란 연작 시에 담긴 풍경. 참가자미를 썰어 뼈째 오독오독 씹어먹는 맛이 그만이겠다. “동해에는 내가 친한 가자미와 자랑할 만한 음식이 많다.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소주잔을 거듭하는 맛…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와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 백석이 함흥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때 쓴 수필 ‘동해’의 일부다.

강원도, 함흥 이북 사람들은 동해안 해류를 타고 멀리 남쪽 바다로 내려가 조업을 하는 어부들을 가리켜 ‘남바리’라 불렀다고 해. 오징어를 잡아 오면 오징어 남바리. 간자미를 잡아 오면 간자미 남바리. 노총각 어부가 섬에서 여인을 꼬드겨 오면 어부인 남바리. 여러 명이 그물 끝을 잡고 들어 올리는 ‘후릿 그물’에 걸리는 게 물고기가 아니라 시였던 백석의 날들이 부러워라. 남바리를 염려하고 기다리는 이북의 여인이 요리한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안주, 버들개(버들치) 통구이, 횃대생선된장 지짐이라든가 명태골국, 은어젓’은 무슨 맛일까. 봄에 입맛이 돌아야 겨울에 땔감나무 하러 산에 갈 수 있대. 만약 봄에 입맛이 안 돌면, 그 전에 산으로 묻히러 간다는, 쬐끔 무서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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