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행복한가요?

행복한가요? 이런 질문을 일상에서 던진다면 위험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왜 사니, 행복하니 같은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은 영화나 드라마 속 대사로나 등장할 법하니 말이다. 하루하루의 일상 가운데서 묻기에, 행복이란 무척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행복하냐는 질문은 뒤로한 채, 우리의 일상은 주로 이거 얼마예요? 식사는 했어요? 언제까지 끝내야 해요?와 같은 생계형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5월4일 개봉한 샘 레이미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저: 대혼돈의 멀티버스>(사진)는 행복에 대한 영화이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한때는 악동이었으나 어느새 환갑이 넘은 1959년생 감독은 여러 번 관객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말이다. 우주를 구하고, 전 인류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서 행복이란 질문과 주제는 낯간지럽기도 하다.

늘 거창했다. 마블, 디시코믹스 원작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제어들 말이다. 문제는 이런 주제어들이 상투적으로 늘 대중적 화해와 결말의 봉합 마법실처럼 남용되다 보니 일종의 할리우드 문법의 관용어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시가 불가능해지고 볼거리로서의 영화적 재난이 불편해졌다고들 한다. 수많은 영화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슈퍼빌런이나 빌런의 이원 대립 양상으로 구현되는 할리우드 대중 영화의 문법에 균열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9·11은 미국 사회를 오히려 결집하게 했다. 세계사 속에서 거의 외상을 경험한 적 없던 미국 사회는 9·11 이후 애국주의라는 프로파간다 아래 뭉칠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 위협이 내부 결속을 강화한 셈이다. 오히려 미국 사회의 영웅이 사라진 것은 사실상 2007년 이후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나름의 세계 1등 국가로서 세계 최고의 금융 건전성을 자랑하는 부자 나라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나마 유지되었던 미국의 중산층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미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이후 더욱 벌어졌고, 유리바닥을 통한 교육자본의 격차도 따라잡을 길이 끊어졌다. 말도 안 되는, 소위 영화나 시트콤에나 나올 법한 선거 캠페인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밑바탕에도 이 내부적 붕괴가 있다. 진짜 빌런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내부에 있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외부의 적, 특히 우주의 악당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 역시 공교롭게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친근한 적들과 싸우던 영웅들이 우주에서 온 악당과 싸우고 우주로부터 온 초악당과 싸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율도국이나 샹그릴라 같은 동시간적 공간 속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멀티 유니버스가 등장했다. 지구엔 답이 없는 것이다.

간혹 등장했던 타임슬립이나 시간여행 같은 소재들은 멀티 유니버스로 대체되기 시작하더니 거의 주류 문법이 되었다. 멀티 유니버스 세계는 지금 여기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 대안의 삶이 존재한다는 상상이다. 현재가 불만스러울 때 시간을 돌이켜 현재를 교정하려는 게 타임슬립의 욕망이라면 멀티 유니버스는 이생망, 즉 이번 생은 망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더 나은 삶의 버전은 이생이 아닌 타생, 저생, 다른 생에 있다.

샘 레이미의 질문은 멀티 유니버스의 이 깊고도, 단순한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 속 악당인 스칼렛 위치가 멀티 유니버스를 통해 갖고자 하는 삶은 다름 아닌 어느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다. 완다라는 이름을 가진 스칼렛 위치의 행복은 꿈속에 있고, 지금, 이곳의 현실은 상실과 아픔뿐이다. 완다는 세상 어딘가 다른 곳에 사는 완다가 행복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세계를 갖고자 한다. 결국, 행복이라는 이름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악당이 된 셈이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돈이나 권력을 마음껏 갖기 위해 악당이 악을 부렸다면 완다는 꿈속의 행복을 소유하기 위해 악을 부린다. 허투루 버리는 소위 떡밥 없이 고전적인 플롯 설계의 묘미를 살려 샘 레이미는 자기만의 인장과 낙관을 찍는다. 이 황망한 농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행복한가요? 거대한 적과 싸워야 하는 슈퍼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에서 정작 질문은 관객에게 던진다. 행복한가요? 결국, 여기 이곳에서 좀비와 빌런이 창궐하는 난리를 보고 즐기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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