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국회가 할 일

오수경 자유기고가

내 ‘랜선’ 친구들은 늘 투쟁 현장에서 발견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하는 종걸·미류가 있는 국회의사당 앞 평등 텐트촌에, 강제 집행당하여 쫓겨난 을지로 OB베어를 지키기 위해 노가리 골목에,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SPC(파리바게뜨)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한 달 넘게 단식하고 있는 임종린 지부장 곁에, 장애인들과 함께 지하철역에.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친구들 덕분에 요즘 현장에 나갈 일이 많아졌다. 내 몸이 여러 개여서 연대가 필요한 모든 곳에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일단 국회 앞 평등 텐트촌 앞을 서성인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출근길에 들러 지하철 입구에서 팻말 시위를 하고, 퇴근길에 들러 종교계에서 여는 예배나 주최 측에서 마련한 집회에 참석한다. 며칠 전에는 여러 시민들과 함께 국회 담벼락을 둘러싸고 동조 단식과 팻말 시위도 했다.

이렇게 소심하게 잠깐이라도 국회 앞에 머무는 이유는 첫째, 매일 성실하게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외치는 이들 때문이다. 그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법안의 취지와 지향을 왜곡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쓰는 시민들을 모욕하고 위협한다. 그들로부터 평등 텐트촌을 지키면서 그런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이 더 많다는 걸 알리고 싶다.

둘째,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회의 몫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시민들은 15년 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해왔고, 그에 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왔다. 그런 결과로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박주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을 발의했다. 그렇게 겨우 국회 문턱 앞까지 갔는데 국회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검수완박’이 시급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국회에서 세월 모르고 잠자는 법안 중 차별금지법(평등법)이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검수완박’을 외치며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는 단결력과 박력이 어째서 차별금지법(평등법) 앞에서는 종교계 반대를 앞세워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의 존재를 까먹었을까 봐 알려주기 위해 친절하게 시위에 나선 것이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과 만나는 일은 늘 괴롭다. 이쪽이 절박하듯, 저쪽도 절박하다는 걸 상상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차별에 고통받는 이들이 없도록 최소한의 법을 만들자는 사회적 열망에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금지하는 악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막아서는 걸 시민의 정당한 목소리로 여길 이유는 없다. 이런 차별과 혐오의 볼륨이 높아지고 시민과 시민이 대립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건 사회적 낭비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을 속히 제정하는 것이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평등 텐트촌에는 또 다른 투쟁 현장인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 회원들이 꽃으로 만든 차별금지 걸개가 걸려있고, 국회의사당 담장 너머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준비가 한창이다. 그 걸개와 취임식 무대를 번갈아보며 생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이렇게 거리에서 삭발하거나 단식해야 할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쟁 현장에서 보내게 될까? 아득하지만, 각오는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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