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실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코로나19가 물렁해지긴 한 모양이다. 곧 국제선 운항이 전면 재개된다고 한다. 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비행기는 바쁘게 대륙을 오갔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로 경영이 직격탄을 맞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화물 운행을 발빠르게 늘려 2021년 영업이익 신기록을 세웠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례적인 경영성과로 세계적인 항공매체 ‘에어트랜스포트 월드’가 ‘2021 올해의 항공사’로 대한항공을 선정했다. 모 일간지는 대한항공이 ‘항공업계의 오스카상’을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그러나 공항·항공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는 위기일 뿐이었다. 인력 감축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정리해고로 나간 동료의 몫까지 늘어난 업무로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무리한 위험작업에 투입되어 사망하는 소식들이 ‘항공업계의 오스카상’ 소식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지난 4월26일 대한항공의 자회사 (주)한국공항의 정비공이 비행기를 견인하는 토잉카를 수리하던 중 바퀴에 깔려 숨졌다. 토잉카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다. “무조건 ‘1순위’로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사고 당일에도 토잉카 정비를 빨리 ‘쳐내기’ 위해 2개 정비조가 투입되었다. 앞쪽에서는 에어컨을 정비하고, 뒤쪽에서는 바퀴 쪽을 살폈다. 에어컨을 정비하던 팀이 뒤쪽의 정비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에어컨 시동을 끄는 과정에서 바퀴가 움직였다. 시동을 끄면 바퀴가 자동으로 정렬되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중대재해법 막느라 변호사 10명을 고용했답니다. 그러면서 시동을 끈 노동자 처벌을 약하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우리 중에서도 베테랑 형님인데….”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동을 끈 노동자에게 어떤 추궁이 돌아올지 예상이 되었다. 차량 뒤쪽에서 작업 중인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는가. 시동을 끄면 바퀴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는가. ‘베테랑’ 노동자의 무수한 잘못들을 뒷받침할 서류들과 관행을 잡아내기에 굳이 변호사 10명씩이나 필요할까 싶다. 안전시스템이 부실한 작업장에서 ‘베테랑’ 노동자의 노련함이란 사고 후엔 ‘고의적 실수’로 지목되기 쉬운 ‘허용된 관행’투성이다.

그 10명의 변호사 중에 1963년 설립되어 50년이 넘게 운영되고 있는 전문적인 항공정비회사가 ‘동시작업’의 위험성에 따른 작업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채 변변한 작업절차서 없이 작업을 지시해온 문제를 짚어낼 변호사가 있을까? 코로나19 시기에 정비인력이 140명에서 109명으로 줄어 ‘이러다 사고 나겠지’ 싶은 위험을 알고도 동시작업을 해왔던 ‘관행’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낼 변호사가 있을까?

2016년 이후 산재사고 사망자는 조금씩 줄었지만, 이번 사고와 같이 동시작업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되레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751명의 노동자가 동시작업으로 사망했다. 2020년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사고도 동시작업이 원인이었다. 이들이 ‘작업초짜’여서 동시작업의 위험성을 모른 것이 아니었다. 일의 순서를 정하고, 안전한 작업방식을 정하는 것은 베테랑 노동자가 아니라 50년간 기업을 경영해온 베테랑 기업인이 할 일이다. 누가 누구의 실수를 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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