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자유민주주의에 복무하나

송기호 변호사

갑작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떠오를 만큼이다. 윤석열 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일본에서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전격 참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끼리 먼저 긴밀하게 반도체 공급망과 같은 유대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가치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미국은 IPEF를 21세기 경제 협정 또는 새 경제협정 모델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경제, 공급망 안정, 청정에너지 기반 시설과 기후 위기를 위한 에너지 전환 등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투명성, 공정 과세, 그리고 부패문제 대응도 이 IPEF의 주요 내용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 과제는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환경개발회의 등에서 대응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손잡고 해결할 공통의 과제이다. 미국, 일본, 호주가 중심이 된 일부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전유물도 아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의 구체적 성격은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렇지만 올 1월31일, 미국 매체 폴리티코가 공개한 미국 정부 문서를 보면, 중국을 누르겠다는 것이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더욱이 미국은 이번 출범에서 중국과 정치적으로 밀접하다는 이유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제외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아세안의 회원국이었다. 출범일에 발표한 백악관 자료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이 IPEF의 목적을 인도·태평양을 ‘자유롭고 개방된’ 지역으로 만드는 데에 둔다. 이 IPEF가 개방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을 개방적인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IPEF가 지금까지의 자유무역협정과 다른 점은 미국이 참여국에 미국 시장을 개방해 주는 급부가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일컬어 미국은 이 IPEF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IPEF의 실질을 중국 견제이고 차단이라고 본다. 중국이 아시아 경제에서 누리는 번창과 영향력을 막겠다는 것이다. 기실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본이 주도한 것이다. 일본은 2019년에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맞서 미국, 호주와 함께 ‘블루닷네트워크’라고 하는 협정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국제 기반시설에 적용하는 규칙을 만들려고 했다. 여기서의 블루는 중국의 레드에 대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IPEF는 그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IPEF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디지털 경제규범 등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문제이다. 중국을 배제한 디지털 규범이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일방적으로 중국을 배제하는 내용이라면 국제통상 규범 위반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중국에 최혜국 대우, 즉 차별 없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이 IPEF에 올라탔는가? 한국은 전체 수출액 중 약 32%를 중국과 홍콩 등 중국권에 내보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미국이 모두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중국적이면서 동시에 미국적일 수 있어야 한다. 두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 혁신 모두에 깊이 연계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략적 통상정책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미국은 반도체 후진국이 아니다. 단지 반도체 칩 조달을 대만과 한국에 의존하는 문제가 있을 뿐, 전체 반도체 가치 사슬에서 디자인 분야와 장비 등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칩 생산을 아시아에 의존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률 제정과 함께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50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이다. 자신이 주는 반도체 칩 생산 보조금이 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자, 유럽연합과 함께 별도의 반도체 보조금 국제규범을 추진할 정도이다.

미국이 말한 한·미 반도체 가치동맹이라는 것도 미국이 미국 본토, 일본, 대만에서의 반도체 칩 생산이 풍부하게 될 때까지 한국으로부터 안정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것이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 하물며 영원한 가치동맹은 더 없다. 2020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은 연간 17.3% 증가했다(스태티스타 통계).

레드이든 블루이든 반도체가 필요한 사람에게 메이드인 코리아 반도체는 간다. 그리고 가야만 한다. 반도체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지 않아도 되는 국제경제질서가 한국의 국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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