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국과 교육망국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 교육입국과 교육망국

미국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스펙 쌓기’를 둘러싼 비리와 부정의혹으로 한국 사회가 무척 시끄럽다. 아예 전문 상담업체가 있고 엄청난 액수의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뉴스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원래 제품에 관한 설명서 정도로 이의 내용을 이해했던 ‘스페시피케이션’의 약자인 스펙이 입시나 취직을 준비하는 과정에 그렇게 널리 사용되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 종종 들를 때면 자녀의 명문대 입학 준비를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일부 한인 사회 안에서 나도는 이 단어를 나도 가끔 들었지만, 반세기 넘게 살았던 독일 사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용어였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이른바 ‘기러기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뜸해졌지만, 아직도 나에게 자식의 조기유학에 대해 조언을 청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영어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조기유학이지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나 학비가 없는 독일에 눈을 돌린 부모들이다.

그러나 내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부정적이었다. 가정과 학교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떠받드는 두 큰 기둥이다. 일차적인 사회화는 가정, 그리고 이차적인 사회화는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인간에게 결손 가정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학교생활 간의 원만한 연결이 그렇게 바라는 것처럼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한마디로 너무 크다.

외국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자격조건 쌓기에 열심이거나 조기유학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아직은 제한적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생각을 아예 접어둘 수밖에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의 희생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뜨거운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외국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관하에 2000년 이래 3년마다 시행되고 있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중국, 일본, 싱가포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한국은 늘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전혀 궤를 달리하는, 한국 교육으로부터 탈출하는 노력 사이에 걸려있는 엄청난 거리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료 시각이 교육현장 문제점 놓쳐

위에 언급한 2018년도 평가보고서는 한국 학생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조사대상 71개국 가운데 65번째인, 거의 밑바닥 수준이라고 밝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소설과 영화 제목처럼 한국 청소년들은 한마디로 공부는 잘하지만,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의 경쟁 일변도식 주입식 교육보다는 학업 성취도와 함께 삶의 만족도가 높은 핀란드의 교육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문화나 사회적 구조가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를 단순 비교하고 우열을 따지는 데 문제는 있지만 몇 가지 내용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협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 또 가르치는 선생의 책임감과 열성, 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이 점에서 핀란드 교육제도의 장점이 있다고 본다.

유교적 전통을 지닌 한국 사회에서도 교사에 대한 존경도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논리와 법리로 비약, 교육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불법화하고 가입한 교사를 한때 무더기로 교단에서 내쫓은 어두운 역사도 있다.

사회체제이론에 따르면 교육은 권력의 유무를 따지는 정치, 손익을 계산하는 경제,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법체제처럼 이진법(二進法)의 코드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학생 학습능력의 우열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선발하는 체계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이나 돈, 그리고 법적 구속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스러운, 어떤 신성한 가치까지 지닌 교육이야말로 보편적이며 가치중립적인 공공의 귀중한 재부라는 생각을 낳는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잘해서 크게 성공한 ‘흙수저’에 관한 신화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 세워

교육이 사회체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라는 이런 신화를 깬 역사적인 사건은 서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이었다. 교육에서 권위주의와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교육개혁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 나아갔다. 비록 급진적인 이 개혁운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들해졌지만, 비판정신과 자율성의 함양이 교육의 올바른 지향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기에 이의 개혁 또한 장기적인 안목 속에서 추진되어야 하고, 입시나 전형 방식을 개선하는 식의 땜질이나 하는 권의지계(權宜之計)로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항상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표되는 교육개혁의 과제와 이에 따른 정책 항목들이 길게 나열되지만 서로 엇비슷해서 사실 구별하기조차 힘들다.

얼마 전 출범한 정부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교육제도의 혁신을 강조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는 질문처럼 교육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데 대해서는 역시 답이 없다. 100만 디지털 전문인재의 육성이 곧 교육개혁의 내용일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와 달리 이른바 지구화 시대의 철학인 신자유주의의 기치 밑에서 국경 없는 자본은 한국의 교육시장을 공략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며 공교육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 지구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외고나 국제고와 같은 특목고나 재정기반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자사고의 존재와 공교육 간의 긴장관계가 이를 보여준다.

개화기 이래로 뿌리내린, 교육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는 ‘교육입국’의 이념은 알게 모르게 교육개혁의 주체가 국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심어왔다. 1968년 12월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에 등장하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도 그중 하나다.

헌법상 명시된 국민의 교육의무와 권리에 대해 책임진 국가가 법률과 행정력을 통해 공교육을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료 중심의 시각은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쉽게 놓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또 실용주의를 빌미로 교육에 대한 정치나 경제의 요구에도 쉽게 따른다. 물론 전문가를 포함한 교육위원회도 있지만 이의 역할은 자문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학부모, 교사와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의 꾸준한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국에도 설립된,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발도르프’와 같은 전통이 있는 독일에서조차도 시민사회가 교육개혁에 일정한 동력을 제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교육개혁은 세대를 넘기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과외망국론’이니 ‘서울대학망국론’이니 하는, 교육이 오히려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 지 꽤 오래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교육이 나라를 망치기 전에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삶을 먼저 망친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 아닌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느냐’는 저항의 목소리와 ‘행복은 성적순이지, 무슨 소리냐’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오가는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하나 있다.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어른을 만든다”라는 게오르크 포르스터(1754~1794)가 남긴 말이다.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세계를 일주, 계몽기의 사상가로 당시 세상을 가장 많이 보고 남긴 결론이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입국과 교육망국 사이의 거리는 사실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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