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 2022년 여름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 고행 2022년 여름

지난 두 해 여름에는 보지 못한 풍경을 올해는 보게 되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해변으로 몰려가는 피서객의 행렬을 바라본다. 포르투갈에서 이레 동안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발생 숫자를 확인해 보았다. 최근 숫자는 500을 넘나든다. 거의 4000에 육박했던 올해 1월 말의 극히 위험한 상황에 비하면 아주 양호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도 언제 코로나19 위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모두 즐거운 모습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연일 40도를 넘는 살인적인 폭서, 가뭄과 산불에 관한 소식이 매일 전해지고 있다.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국가가 지금 모두 미증유의 기후재앙으로 고생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연일 산불과 싸우고 있고 전 국토의 97%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앞으로 2년 정도는 식수공급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식수 절약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내가 사는 포르투갈 남부 해안지방에는 20여개의 유명한 큰 골프장이 모여 있는데, 골프장에 대한 환경운동 단체의 집중적인 성토도 더욱 거세졌다. 식수도 부족한 판에 골프장을 유지하는 데 너무 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다.

스페인 남부 지방도 평년의 저수량의 반 정도도 채우지 못하는 저수지 때문에 식수에 비상이 걸렸다. 프랑스의 지중해변 코타주르의 산간지역 마을에서는 식수로 양치질하는 것도 금지될 정도다. 현재 식수 부족으로 가장 고통을 당하는 곳은 북부 이탈리아다. 알프스에서 시작해서 아드리아해로 빠지는, 이탈리아의 젖줄이라 불리는 포 강의 갈라진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말랐다.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로 잘 알려진 베로나에서는 식수, 요리와 세수를 위한 물 이외의 사용을 금지하는 배급제까지 도입했다. 얼마 전에는 북부 이탈리아 돌로미티의 마르모탈라 계곡에서 갑자기 굴러내린 얼음과 암석 덩어리에 깔려 등반대 일행이 죽거나 다친 큰 사고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알프스의 빙하가 녹기 때문이었다. 올해 여름에도 예외 없이 그리스의 펠로포네스반도와 중부산간지역에는 300여 군데에서 산불이 나 재난비상이 걸렸다.

한국, 파리협약 목표 달성 난관

현재 북유럽과 발틱해의 주변지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고온 현상은 1200년 이래 경험치 못한 대재앙이라고 미국의 ‘우드스 홀 해양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이의 원인으로 대서양에 있는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 형성되는 거대한 고기압권이 습한 대서양기후를 북쪽으로 내몰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반도와 달리 이베리아반도와 지중해 연안은 원래 겨울에 비가 많이 내려 이때 얻은 수자원으로 한 해를 버틸 수 있다. 나는 이미 이곳에서 세 번째 겨울을 났지만, 아직 이베리아반도의 비 많이 내리는 겨울을 경험치 못했다. 대략 1850년까지는 예외적인 가뭄 현상이 10년에 한 번꼴로 나타났으며 1980년 이전에는 거의 7년에 한 번씩, 그리고 그 이후로는 4년마다 나타난다고 보고서는 밝히면서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활동으로 발생한 온실가스에 기인한다고 결론지었다.

한여름밤의 단꿈을 설치게 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난 10년 동안 지속해서 늘어, (초)열대야도 동시에 지속하고 있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하라는 한국 기상청의 최근 권고를 보면서 거의 20년 전의 일을 회상하게 된다. 37년 만에 귀국했지만, 결국에는 서울구치소의 한 평의 좁은 독방에서 혹독한 추위, 봄에는 황사, 여름에는 장마를 경험했다. 석방된 지 얼마 후 찾은 8월 초 망월동 국립묘지를 내리쬐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찜통더위와 (초)열대야가 올해에는 이미 6월 초에 시작되어 불볕더위 주의보까지 나돈다. 한반도의 이상기온 현상을 두고 지표면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반도도 결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1912년부터 관측을 시작한 서울과 부산 등 6개 지점의 기후값을 분석해보니 1910년부터 1940년까지보다 최근 30년 사이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진 것으로 기상청은 발표했다. 또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도 지난 100년간 1.6도가 올라 전 지구 평균보다 상승폭이 2배가량 컸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국제협약을 통해 해결하자는 취지로 195개국이 서명한 2015년의 파리 기후협정에 한국도 참여했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1850년의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2도 이하로 유지하고, 기온 상승폭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하자는 협약이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이 목표를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지니며 이의 이행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검증을 5년 간격으로 받는다.

2021년 세계 8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은 2030년까지 전망치 대비 24.4%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했고 파리협약의 공동목표인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2020년 말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목표치를 낮게 제출한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감축 목표를 수정, 다시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국제기후정책을 분석하는 ‘기후 행동추적’(CAT)이 올해 초에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 인도, 칠레, 아랍에미리트연합 등과 함께 한국은 파리협약의 장기적인 목표 달성은 물론, 2030년의 목표치 달성도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의 근거로 현재 석탄 화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3분의 1 수준에 이르고 수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의 비율도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2021년 8.6%에 지나지 않았다. 이 비율이 노르웨이 99%, 스웨덴 67%, 포르투갈 65.5%, 독일 41.5%, 중국 28.8%, 일본 22.3% 그리고 미국은 20.5%였다.

원전이 녹색에너지 될 땐 더 우려

개인 간에도 그렇지만 국가 간에도 이행을 약속했지만,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약속을 파기하는 일은 다반사다. 중국에 이어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엄중한 미국이 파리협약에 서명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후위기는 일종의 지어낸 이야기라며 탈퇴를 선언했다.

애초에 이 협약에 두 나라만 서명하지 않았다. 내전 중인 시리아와 니카라과였다. 니카라과는 협약의 내용이 부실하며 알리바이를 위해서 기후위기의 피해자인 후진국들이 협약에 들러리 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017년 말에 시리아와 니카라과도 이에 결국 합류했고, 올해 2월에는 조 바이든의 백악관 입성과 동시에 미국도 협약에 복귀했다.

2050년의 기후중립 목표달성을 위해 사회 전 분야를 전환하는 야심에 찬 정책 패키지인 ‘그린 딜’이 2019년에 발표된 이후,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유럽연합은 받았다. 그러나 지난 7월6일 유럽연합의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도 녹색에너지로 보는 이른바 ‘녹색분류체계’를 통과시킴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말미암아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수급에 점차 어려움을 겪겠지만, 유럽연합 안에 흐르는 일반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먼 결정이다. ‘가스는 석탄처럼 검지 않아서 그런가?’ ‘감자를 채소라고 우기면서 장사하는가’ 등 비난의 소리가 쏟아지고 유럽연합의 성원국들의 의회가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의 비중이 낮고, 원전의 비중이 유럽연합보다 높은 한국에서 이번 유럽의회의 결정을 과연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원전을 녹색에너지에서 제외한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을 포함하도록 녹색분류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가일층 뜨거워진 이 여름이 가면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소식에 세계가 암울해지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어려운 사람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이웃과의 거리를 더 멀리하게만 하는 2022년의 무더운 여름을 날 수 있게 하는 청량제는 정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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