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개혁이 민생인 이유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대 민주공화제가 정당중심 민주주의로 발전한 것은 아이러니다. 애당초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공화국에서 부분이익의 대변자인 정당은 공화제의 저해요소로 인식되어 금기시되었다. 제임스 매디슨이 미국헌법의 교의를 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 설파한 정당불신론이 대표적이다. 도덕주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까마귀 노는 곳일 뿐, 현자들은 얼씬거리지 말아야 할 금단구역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과연 민주공화제에 부합하는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공화국에서 현안을 해결하자면 회의체가 필요하고, 그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따를 수밖에 없기에, 결국 결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정치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의회처럼 국사를 논하는 정책결정과정에서 백가쟁명을 효율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결사는 불가피하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건 현대 국가의 숙명과도 같다.

우리 헌법은 이 숙명에 순응하여 금기시되던 정당에 헌법적 지위까지 부여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와 별도로 정당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당에 대해 국고를 보조할 수 있는 특혜를 허용할 뿐만 아니라 헌재의 심판에 의해서만 해산될 수 있는 특권도 부여하고 있다.

정당중심 민주공화제의 현실적 숙명을 감안하더라도 정당에 허용되는 특혜와 특권이 그냥 주어질 수는 없다. 특별대우에 상응하는 전제조건을 준수하고 민주공화제에 걸맞은 책무의 실천이 필요하다. 정당의 조직과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고지원은 정당한 목적과 공정한 기준에 따라 차별없이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 40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당법제와 관행은 이러한 헌법적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이다.

정당에 대한 특별대우는 민주적 조직을 조건으로 하는데, 정당가입의 자유는 억압되고 있다. 올 초 정당연령이 16세로 하향되어 청소년의 정당가입이 가능해지면서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초·중등교원과 공무원의 가입은 금지됨으로써 정당의 민주적 구성이 구조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지구당과 지역정당 금지로 지방정치에 충실한 민주공화적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정당보조금은 거대정당 중심으로 차별적으로 배정됨으로써 군소정당과의 경쟁관계가 더욱더 양극화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정당법제와 제도는 물론이고 정치참여를 제어하는 사회경제적 문화도 정당 발전의 걸림돌이다. 정당가입 등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취업규칙이나 고용주의 강제가 국민이 주권자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어떻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왜 전문직업인이나 직업정치인이 아닌 대다수 일반 국민은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공직에 참여했다가 다시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화적 사회경제체제를 가질 수 없는가. 정당의 민주공화적 기반이 통제되고 정당과 주권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구축된 결과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회 다수당이지만 행정권을 넘겨주고 야당이 된 민주당은 대선 후 넉 달이 지나기도 전에 두 번째 ‘비상’대책위 체제다. 정당의 비전과 민생정책에 대한 논의보다 당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만이 보인다. 급조된 후보로 얼떨결에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경제위기의 엄중함에도 민생을 챙겨야 할 집권당의 최소한의 책무마저 팽개치고 이른바 윤핵관에 의한 당대표 찍어내기가 한창이다. 양대정당의 교착으로 국회 하반기 원구성은 마냥 지체되면서 국회가 장기간 개점휴업이다. 그사이 법치의 이름으로 법치를 유린하는 검경사유화가 버젓이 감행되는데 속수무책이다.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위기 국면에서 법인세나 종부세 감세라는 실패가 증명되고 정의롭지 못한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보건복지 사령탑은 여전히 공석이다.

흔히들 검찰개혁이든 정당개혁이든 정치놀음은 제발 그만두고 민생에만 집중해 달라고 호소하곤 한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우리 정당들의 현주소는 정당불신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원인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정당을 금단구역처럼 회피하니 거대정당은 핵심지지층에만 구애하면서 권력다툼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결국 민주공화국을 빈껍데기로 만드는 정치억압적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의제화하고 관철하는 정당을 가질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이 은연중에 오염된 탈정치와 반정치의 문화가 반민주공화적 정당체제의 숙주이다. 정당개혁이 곧 민생현안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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