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를 둘러싼 우익 종교의 그림자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총사령부가 1948년에 펴낸 <일본의 종교>에서는 “일반 일본인들은 전쟁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적 체험이었다. 일왕의 신성(神性)과 신성(神聖)한 국체를 중심으로 국가의 사명감에 기인한 열광적인 광신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급무사들의 반란으로 이룬 혁명의 전해인 1867년 메이지왕의 칙령으로 왕정복고를 선포하고, 원년에는 제정일치 및 신기관(神祇官·신에 대한 제사를 관장하는 기관) 재흥을 포고한다. 왕권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건국신화에 기반, 신도를 국교로 만들었다. 교육칙어와 황실전범이 제정되고, 무려 17조까지 무소불위의 왕권을 명기한 제국헌법으로 근대국가를 법적으로 완결지었다. 백성의 삶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1945년까지 전쟁의 일상이 되었다. 마지막 태평양전쟁에서만 300여만명이 죽었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그렇다면 일본 정치는 패망 이후에 종교와 결별했을까. 아베 신조 전 총리 테러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우경화된 종교가 발판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대중매체는 테러의 발단을 통일교가 반공전선을 위해 설립한 국제승공연합과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폐쇄적 국가주의 구축을 위해 반북·반중 정서를 환기시키는 반공주의를 이용한다고 본다. 불행한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개헌의석에 도달한 선거 승리와 함께 아베가 열망한 재무장의 ‘보통국가’를 향한 평화헌법 개정을 완수할지도 모른다.

아베가 지향한 정치노선은 화려했던 근대국가의 부활이다. 정치적 스승인 A급 전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필생의 꿈은 헌법 개정과 경제재건에 의한 미완의 제국주의 실현이었다.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사명으로 삼은 기시는 괴뢰국가 만주국의 군비 확충을 위한 만주산업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했다. 그곳에는 만주사변을 주도한 참모본부 작전과장 이시하라 간지가 있었다. 미국과의 최종전쟁론을 주장하며, 먼저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경제계획을 짠 것이다. 이시하라는 중세의 열렬한 <법화경> 신앙인 니치렌(日蓮)의 사상을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한 근대 일련주의의 신봉자다. 일련주의는 세계를 무력으로 통일한 일본에 국립계단을 설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국립계단은 국가가 건립한 계단(戒壇·수계를 통해 승려를 배출하는 곳)으로 제정일치를 말한다.

아베는 2014년 내각의 각료 19명 중 15명을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구성원으로 채웠다. 일본회의는 1997년 ‘일본을 지키는 회’와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통합한 것이다. 전자는 임제종 승려 아사히나 소겐이 신도와 불교계 신종교를 모아 결성한 정치단체다. 후자는 연호의 법제화를 주장한 우익종교 등의 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모임이 출발이었다. 일본회의의 목표는 천황주의 재건, 신헌법 제정, 교과서의 자학사관 철폐, 국가제창운동, 외국인 참정권 반대 등을 통한 패권주의와 민족주의로의 회귀다. 교과서나 교육 쪽에서는 대부분을 성취했다. 근대 종교계는 국가신도의 하부구조로 재편되어 전쟁의 도구가 되었음을 그들이 모를 리는 없다. 불교는 불살생계를 비롯한 핵심 교의를 배반하는 전시교학을 만들어 신도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패망 후 불교종단들은 통렬한 참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베의 언설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침략전쟁과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유학 중 수업 때의 일이다. 역사학 교수는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중국학자가 점심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까닭을 물었다고 한다. 유명한 불교대사전 한 질을 갖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주기로 하고 점심을 챙겨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받은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았을까”라고. 무슨 말인가. 일본 고대의 찬란한 문화는 한반도와 중국의 불교문화 유입에 의해서다. 실크로드를 거친 국제적인 불교는 고대정치 수립에도 큰 힘이 되었다. 중국에 구법순례하는 일본인들을 하급관리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 뜻을 이루게 했다. 선조들은 경전들과 가르침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와 일본의 정신세계와 문화를 윤택하게 했다. 그러니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종교든 정치든 그 세계의 생명은 호혜를 뜻하는 자리이타다. 평화의 길이다. 종교의 광기는 이제 충분하다. 일본 정치는 백성을 화염 속으로 뛰어들게 한 그 무모한 광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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