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형은 필요한가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인근에서 13~71세 여성 10명을 상대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이 있었다. 수사를 통해 8차 살인사건 범인은 체포했으나 나머지 9건의 살인사건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2020년 7월2일 10여건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이춘재라는 놀라운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8차 살인도 당시 범인으로 체포된 윤모씨가 아니라 이춘재라는, 있으면 안 되는 수사내용이 들어 있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동안 눈앞이 깜깜해지고, 심하게 머리를 맞은 듯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렇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조차 수사기관과 법원이 모두 오판을 했다는 말인가? 이춘재 사건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 역시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13년 만에 사형제도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사형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사회계약설, 헌법상의 기본권 제한, 헌법 제110조 제4항 등 철학적이고 법리적인 질문도 많았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두 개였다.

첫번째 질문은 사형은 형벌 억제 효과가 있는가? 이에 대해 사형을 찬성하는 입장은 사형이야말로 흉악한 범죄를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형벌이라고 한다. 설득력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분명 사회에 주는 경고기능이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 바로 흉악사건 발생에 국가 역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발적 격정 살인사건은 국가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우발적 격정 살인 범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사형이 선고될 수 있는 흉악범죄 유형으로는 연쇄살인범이나 수많은 강력범죄 전과가 있는 자가 출소해 2인 이상 살인을 했을 때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살인은 국가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력범죄를 밥 먹듯이 저지른 범죄자가 출소를 앞두고 재범의 위험성이 여전히 있다면, 단순히 전자 감독 장치에 기대어 출소시켜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재범의 위험성을 줄여야 했다. 국가는 흉악범을 억제하기 위해 사형을 주장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흉악범죄를 막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흉악범죄가 없으면 사형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질문은 인간에게는 오판의 가능성이 없는가? 이에 대해 사형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오판의 가능성은 사법제도가 가지는 숙명적 한계이지 사형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맞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적 한계다. 그러나 오판을 시정할 수 있는 정도가 사형과 무기징역일 경우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이춘재 연쇄살인에서 진범으로 오해받은 윤모씨는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국가배상도 받을 수 있었다.

필자가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는 흉악 범죄자를 옹호하거나,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범죄를 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오로지 오판의 소지가 숙명적으로 존재하는 이상 국가의 이름으로 또 다른 살인이 집행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형이 폐지된다면 반드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신설되어야 한다.

사형제도가 위헌이 되면 모든 사형수가 세상으로 나온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아니다. 사형에 대해 위헌판결이 나왔다 할지라도 2010년 2월25일 이후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에 대해서만 소급적으로 적용되어야 효과가 있다. 2010년 2월25일 이후 형법이 적용된 사형수는 3명뿐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형수가 일시에 석방되어 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필요한지 묻고 싶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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