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장파장 논법과 지도자의 거짓말

피장파장 논법은 익히 알려진 논리적 오류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주장이나 이론의 논리구조에 대한 논증이기보다는 이와 무관한 ‘사람에의 호소(ad hominem)’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주장의 참, 거짓을 밝히기보다는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인간성, 행적, 정황 등을 지적해서 그의 주장을 거짓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오류라는 것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문재인 정부 시절 종종 피장파장의 오류를 지적하는 논법이 보수 언론의 칼럼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정책 난국의 원인으로 내세울 때, 피장파장식 오류 논법은 촛불 정부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식이었다. 민심은 적폐의 핑계를 대지 말고 촛불 정부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기에 사실 피장파장의 오류를 지적한 주장은 무조건 지지받았다. 적폐 정부를 넘어설 실력이 없는 모든 논의는 핑계일 뿐이라는 공론이 펼쳐졌었다.

최근 새 정부 인사들이 피장파장 논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대통령께서 직접 ‘전 정부 인사와 비교’ 논법을 거론했고 ‘우리 법무장관’은 청문회나 대정부질의에서 지난 정부의 무능을 똘똘한 반사 논리로 지적했다. 시청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우리 장관’은 그야말로 스타 장관으로 부상했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억울한 일일 것이지만, 피장파장 논증이 어떨 때 지지받고 왜 배척받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피할 이유는 없다. 실제 피장파장 논증은 정치 현장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애용되는 경우가 잦다. 피장파장 논증은 정황과 주장의 차이를 지적함으로써 비판당사자가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는 논리적으로도 유효하다. 특히 지지자들의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데는 이만한 통쾌한 논법도 없다.

이 점에서 피장파장 논증이 때로는 오류가 아닐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상대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 상대방의 도덕적인 자격과 과거의 행적을 전혀 거론할 수 없다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경직되게 적용하면 올바른 정치 비평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피장파장 논법은 비판의 당사자가 본인도 그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그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듯 행동하는 가식을 지적하는 점에서 통렬하다. 이 점에서 ‘우리 법무장관’의 성공 사례는 분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논란을 상대방의 가식에 대한 비판과 뒤섞는 논법이 잦아지면 결국 의도적 논점 일탈이 부각된다. 무능은 무능이고 가식은 가식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에도 피장파장 논법의 1차적인 구조 자체는 오류이다. 따라서 그런 논법이 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허용되는 기간은 매우 짧은 특정 시기 혹은 정권 교체기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여당 인사가 피장파장의 논법에 중독되면 야당의 통제를 거부하게 된다. 정책 수행을 책임진 권력의 입장에서 이 같은 정당화는 수평적 책무성보다는 수직적 책무성에 호소하는 행태로 이어지기 쉽다. 수직적 책무성만을 강조하는 정치 체제가 포퓰리즘이 되기 쉽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대의 지지율로 포퓰리즘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하지만.

국제정치학의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횡행하고 있는 거짓말을 현시한다. 국익을 위해 시작하는 각종 거짓말도 있지만 전략적 은폐나 자유주의 규범에 반하는 거짓말(Liberal Lie)과 같은 특정 형태의 거짓말은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가 더 자주 애용한다는 것이다. 피장파장으로 시작한 논리가 논점일탈로 이어지다보면 지도자는 자신의 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유혹에 빠지기 쉬워진다. 특히 투명성이 약한 국가안보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잦다. 그러다보면 자유주의 국가의 리더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 즉 자유주의 규범에 반하는 거짓말에도 천연덕스러워진다. 최근 새 정부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전상의 실수나 인사 난맥에 대한 은폐 그리고 전 정부의 외교통일 정책에 대한 악의적 비난과 어처구니없는 사법 공세가 이런 종류의 거짓말로 이어질 경우 그 부메랑의 충격은 작지 않을 것이다.

촛불을 경험한 우리 국민의 눈높이는 천정부지이다. 지난 정부의 ‘가식과 무능’을 공격하고 들어선 새 정부가 이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할 때다. 이런 높은 기대치는 역설적으로 새 정부가 피장파장 논법으로 자신을 포장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에 그랬듯이 현 정부에도 과거와 비할 바 없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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