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해자 시인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그 많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 몇 마리가 나부대며 해종일 복상나무 위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튿날도 한 무리가 그쪽에서 종종거렸다

며칠 뒤에는 하늘 가득 새떼가 북풍을 몰고 은하수처럼 흘러왔다

진눈깨비 날리는 한파와 함께 코로나 역병 소문이 먼 도시에서 흘러왔다

나는 얼음장 성질이 좀 눅눅해질 때까지 부초 발가락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매화나무 뿌리가 물소리 쪽으로 귀 세우는 기척 엿듣자

톱 들고 가위 차고 사다리 위로 올라갔더니

복상나무 가지마다 진흙 발자국이 백 켤레쯤 걸려 있었다

진흙 발자국은 먼 길 떠나는 새들의 항로 이정표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해마다 새들의 이정표를 싹둑싹둑 잘라버렸다는 것,

새들이 지평선 끌고 가버려 옹색해진 들판에서

서른 몇 해 농사와 내 시인 깜냥이 참 구성없다는 것이었다

- 시, ‘가지치기 하다가’, 이중기, 시집 <정녀들이 밤에 경찰 수의를 지었다> 중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장대비가 쏟아진 8월8일 저녁, 난 서울 동작구에 있는 딸아이 집에 있었다. 초저녁부터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폭우가 아니라도 빗방울이 알루미늄 섞인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던 베란다였는데, 그날 저녁은 전쟁영화에서 들리는 총소리 같았다. 번개와 우레가 섞인 물대포 소리는 차차 간격이 없어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베란다에 물이 차오르더니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주방 가스레인지 뒤에서도 물이 넘쳐흘렀다. 급히 냉장고 스위치를 빼고 양푼과 쓰레받기로 물을 퍼냈다. 딸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도 물이 찬단다. 이어 베란다 지붕을 이은 틈새에서 물이 샜다.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앞집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위층 사람들도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왔다. 아주 짧은 말만 오갔다. “거기도 물…?” “차…”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사이 앞집 아저씨가 옥상으로 올라가 공동주택 밖에 있는 맨홀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TV에서 보았는지 집주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잠시 후 TV를 보니 자막이 보였다.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시간당 140㎜가 넘었다고.

며칠 후 시골 집에 왔는데 참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집엔 지붕과 서까래 사이에 줄잡아 참새 100여마리가 입주해 사는데 주민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다니. 이제야 참새한테서 해방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나무에서 둥지로 참새들이 거쳐 가는 베란다엔 지푸라기와 공중에서 내지르는 똥과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청소해대느라 진을 빼니까. 5, 6월이면 가끔 새끼 새가 떨어져 죽어가는 모습도 봐야 하니까.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를 깨우곤 하는 참새 소리를 못 들은 지 3주가 넘었다. 어쩌면 참새들도 수재를 입었는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많던 참새들이 한꺼번에 사라질 리가 없다. 그사이 참새 몇이 지붕 근처를 배회하다 가고, 어느 날은 머리 맞대고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돌아와도 되는지, 임시 피난처에서 더 지내야 하는지 경험 많은 연장자들이 현장을 보고 의논하는 거 같았다.

폭우가 지나가고 급격히 추워졌다. 저녁에 솜바지를 꺼내입다 놀란다. 아직 8월인데 싶어서. 파키스탄은 3개월간의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겨 이재민이 600만명에 달하고 구조헬기가 내려앉을 땅도 없는데, 유럽은 가뭄으로 강바닥이 마르고 씻을 물도 없다니. 물과 불도 부익부 빈익빈이자 총체적 기후재앙이다.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선배 시인 이중기는 가지치기하다 “복상나무 가지마다 진흙 발자국이 백 켤레쯤 걸려 있”는 걸 봤단다. “진흙 발자국은 먼 길 떠나는 새들의 항로 이정표”인데, 명색이 농부이자 시인이란 자가 “해마다 새들의 이정표를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고백한다. 추석을 앞두고 ‘역대급’ 태풍이 온다는데 얼마나 숱한 목숨붙이들이 집을 잃고 떨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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