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인가, 동료시민인가? 약자복지의 오만

당신은 약자인가, 동료시민인가? 복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 대통령의 복지철학이 궁금했다. 답이 제시되었다. ‘약자복지’라고 한다. “대통령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가 진정한 약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부연하면 ‘노동조합 등으로 조직화한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고 그 수혜를 입을 수 있지만, 스스로를 조직화하지 못한 이들을 살피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최근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수원 세 모녀와 같이 빈곤과 고립으로 내몰린 이들, 장애인, 다문화가족, 한부모 가족 등이 약자복지의 ‘약자’로 보인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따뜻한 보수’에 걸맞은 언어이다. 집권 100일이 지나 드디어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복지’가 아닌 ‘약자복지’를 하겠다는 언급에서 나는 한국사회 주류가 오랫동안 가진 오만을 느낀다. 정치인이 장애인, 어린이, 노인의 손을 잡고 다독이는 장면, 극단적으로는 카메라 앞에서 누군가 장애인을 목욕시킨 사건이 떠오른다. 한국의 복지와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인, 어린이, 노인, 한부모, 다문화 가족 등 소위 약자로 소환된 이들은 그 정치인과 동등한 동료시민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든 타인을 약자로 지칭하며 대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라는 촘촘하고 팽팽한 그물망에서 누구나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런 상호의존의 드넓은 그물망에서 벗어나 생존할 수 없다. 시장에서 돈으로 산다고 다 내 것이며, 구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적이라 할 수 없다. 그 형태가 다를 뿐 모두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고, 동시에 기여하고 있다. 생애를 통틀어 잠시 정치적 대표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고 간주될 이유도 없다. 대부분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만큼은 하고 있다.

둘째, 특수한 필요욕구(needs)가 있다는 이유로 약자로 규정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누구든 생애 어느 순간에는 일자리, 간병, 휴식, 돌봄 등에 대한 특수한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수한 욕구는 취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물론 사람들의 고통의 다양함은 사회복지의 세심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은 행정공백을 거론하기 위해 사건으로 동원되기보다는 그 고통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필요로 한다. 배려나 연민의 대상이 아닌 특수한 필요를 가진 주체로서 그의 권리와 우리의 연결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조직된 이들을 국가가 돌봐야 할 약자와 대비시키고, 정치적 복지가 아닌 약자복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복지를 탈정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정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장애인, 빈민, 노인, 어린이가 조직되어 의회와 거리에서 적정소득보장과 충분한 돌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소위 약자복지의 대상에서 탈락하는가? 정치적 복지의 대표로 거론된 노동조합은 어떠한가? 노동권 없는 복지는 아이러니인데 불안정한 고용의 빈자리를 복지로 채우겠다는 것인가? 돈과 권력이 비례하는 지금, 민주주의는 조직된 주체를 통해 풍성해지며 복지의 내용은 시민의 욕구에 부합하게 된다.

사회복지정책은 감정, 그리고 감각의 바탕 위에서 작동한다. 연민은 고귀한 감정이지만 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를 세우는 바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21세기 사회복지는 동등함의 감각을 필요로 한다. 상처받은 시민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연결시키는 복지정치는 사회복지를 상호존중과 연대의 바탕 위에서 세우는 행위이다. 연민을 넘어서는 연대, 그리고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의 감정이 한국 사회복지의 바탕이 되길 바란다. 사회복지는 남은 것을 약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