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상자 밖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복지후퇴를 밀어붙이면서 거칠게 내세웠던 수사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이다. 우리 연금개혁 논의에서도 ‘대안은 없다’라는 주장이 과거 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연금문제를 빨리 제거해야 할 시한폭탄에 비유하거나, 몇 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거칠고 엉뚱한 주장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대안은 없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노후보장은 포기하라’가 쌓이고 쌓이면, 이것이 우리 사회 연금개혁 논의 틀을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좁아진다. 국민연금 급여를 대폭 깎거나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예를 들면 노인 인구수가 증가하니 국민연금 급여를 대폭 깎자는 주장이 있다. 이를 단순히 인구수 혹은 노령인구 비율만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연금개혁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인구수 문제는 생산인구에 관한 것으로, 다시 고용률과 생산성, 노동소득 분배의 개선에 관한 것으로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다. 고용률과 고용의 질을 높이고, 은퇴연령을 늦추는 등 노동 부문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성장의 다른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해법이다.

또한 공적연금 재원문제는 임금에 매기는 보험료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보험료를 어디에 부과할 것인가 하는 보험료 부과소득 기반을 어떻게 넓힐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요한다. 보험료 부과소득에 지금과 같은 상한이 반드시 있으란 법도 없고, 또한 사용자와 노동자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꼭 반반씩 부담하는 것도 철칙은 아니다.

즉 공적연금문제는 그저 급여를 깎거나 보험료를 올리거나 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저울질하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국민연금 급여를 깎으면 해결되는 문제처럼 주장하는 경우에도 그 논리대로라면 근본 문제는 한 번의 삭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국민연금 급여를 깎는다면 미래세대는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과 같은 다른 연금제도들의 역할에 더 많이 기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모두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투입을 줄인다면,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재원을 다른 연금제도에 투여해야 그 기능이 작동한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각자가 내야 하는 전체 노후보장비용은 줄어들지 않거나 더 늘어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국민연금을 대신하여 장기적으로 충실하게 노후보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초연금의 보장수준은 애매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수급률은 낮다. 연금보험료를 많이 내는 덕분에 퇴직연금시장과 개인연금시장은 매우 커졌지만 연금보다는 일시금 비율이 훨씬 높다. 제도 정비 시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들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더욱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적연금은 소득불평등과 장수로 인한 소득불안정 문제에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없다.

얼마 전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 국민연금 급여 인상과 보험료 인상이 권고된 바 있다.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강화가 한국 연금개혁에서 고려해야 할 안 중 하나라고 본 것이다. 우리는 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하면서, ‘노후소득보장 강화’와 ‘재분배’라는 방향을 은연중에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본다. ‘대안은 없다’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대안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뒷받침하는 사회연대와 책임에 관한 생각도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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