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어와 욕설

[송두율 칼럼] 비속어와 욕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비속어나 욕설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사회에 어디나 존재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어릴 때의 추억이지만 걸핏하면 비속어로 시작하고 비속어로 끝내지 않고서는 말을 시작하지 못하는 욕쟁이가 있었다. 뜻도 모르면서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한 욕설을 주르르 입에도 올렸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라 생활전선에 나섰던 이른바 ‘양공주’라고도 불렸던 여성과 미군에 관한 비속한 내용이 주였다. 일반적으로 일본어에는 비속어와 욕설이 상대적으로 적고 반대로 러시아어는 이 분야에서 아주 풍부하고 창의적이라고까지 알려졌다. 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하면 우리말도 결코 이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엄밀한 의미에서 비속어는 대중적이지만 너무 저속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쓰기 힘들다. 비속어는 그러나 내뱉는 사람의 생생한 감정을 곧 전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남을 모욕하고 저주하는 욕설처럼 금지되거나 처벌까지는 가지 않는다.

욕설의 경중에 따라 벌금까지 부과하는 독일의 예를 든다면 한국과 독일 간 욕설 문화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독일에서 가령 자동차의 운전자가 상대방에게 ‘미련한 년’이라고 해서 모욕감을 안겼다면 300유로, ‘멍청한 돼지 새끼’의 경우는 450유로, ‘칠칠치 못한 놈’이라고 했을 때는 19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우리말로 대충 번역된, 이런 정도의 독일어 욕설을 그렇게까지 심하게 다루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또 이번 문제가 되어 언론에 ‘이 XX’로 처리되어 보도된 비속어가 왜 그렇게까지 문젯거리가 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어 XX에 가장 가깝다고 여길 수 있는 ‘멍청이’(Idiot)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독일에서는 15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

문화와 언어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비속어나 욕설의 의미가 똑같지 않지만, 입에 담는 것도 종종 금기시되는 영역을 건드리는 점에서 공통성을 띤다. 특히 용변, 성기와 성행위, 창녀, 병이나 신체장애와 관련된 비속어나 욕설이 그렇다. 또한 동물과 관련된 비속어도 많은데 돼지와 개 또는 원숭이를 들먹이는 비속어가 그런 예다. 일반적으로 불결한 가축으로 여겨지는 돼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인간의 마지막 동반자로까지 여겨지는 개와 연관된 욕설이나 비속어도 뜻밖에 많다 .

우리 사회에도 ‘개새끼’나 ‘개자식’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중국에도 같은 뜻의 ‘꺼우쯔(狗子)’가 있다. 영미권에도 개자식에 해당하는 ‘암캐의 새끼’(son of a bitch)도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비속어다. 독일어권에서 지금은 많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무뢰한’을 뜻하는 비속어 ‘비렁뱅이 개’(Lumpenhund)를, 유난히 개를 싫어했던 괴테도 남겼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개의 삶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한에서 그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 같은’ 또는 ‘개만도 못한’ 품위 없는 인간에 빗댄 비속어나 욕설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을 준다 .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 위협하는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세계는 위협에다 비속어나 욕설까지 더해서 복잡한 갈등의 상황과 구조를 만든다. 바로 이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 비속어나 욕설이 화근이 되어 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일도 많이 생긴다 .

“XX” 땐 독일선 1500유로 벌금

이렇게 복잡한 특성이 있는 비속어와 욕설이기에 이에 관한 언어학, 사회학, 심리학의 연구도 꽤 많이 있다. 특히 욕설이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는 일찍부터 욕설의 어원연구와 관련해서 많이 조명되었다. 독일에서는 이미 1839년에 페르디난트 마인하르트의 <독일의 욕설 사전> 또는 <독일인의 욕설>이라는 일종의 욕설 사전이 나왔다. 알파벳 순으로 독일어 욕 ‘뱀장어’(Aal)로 시작, ‘남녀 한 몸’(Zwitter)으로 끝나는 이 사전의 긴 서문에서 저자는 욕설의 유용성을 설파한다 .

그의 주장을 따르면 욕설은 우선 발설자를 속 시원하게 만들어 건강에 좋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욕설은 자신의 위신을 높여 적에 대해 적절한 방어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오히려 갈등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으면 사람들은 욕을 한다’는 계몽기의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주장과는 정반대다. 욕설은 오로지 자만심이 강한 인간의 어떤 공허함을 메꾸려는 일탈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생산적이고 해방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지만 오늘날 이와 비슷한 논거와 주장은 많다. 불경스럽고 따라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무시하고 일순에 이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세속적인 언어의 세계가 바로 욕설이다. 그런데 이를 변호하는 책자가 최근 눈에 많이 띈다. 영국의 과학전문 기자 엠마 반의 <욕설은 당신을 위해서 좋다>(2018)와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티픈 와일디시의 <어떻게 욕을 할 것인가>(2018)도 여기에 속한다 .

미국의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등장해 매 20분씩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욕설(fuck, dick, pussy, bitch, damn, shit)에 관해 사전편집자, 어원연구자, 심리학자 등을 동원해서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욕설의 역사>(2021)도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는 욕설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포켓 영한사전>(이양하·권중휘 공편, 1960년 개정판)에는 위에 말한 영어단어가 아예 빠졌거나 아니면 번역도 정확하지 못하다. 욕설이라 너무나 상스러워 그랬는지, 아니면 당시에는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수습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욕설하지 말라는 부모나 선생의 훈계를 듣고 자랐다. 비속어나 욕설의 긍정적인 기능에 대해 한번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사물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은 왜 이렇게까지 큰 파문을 낳고 있는가 .

이와 관련해서 나는 독일 연방의회의 역사에서 아직도 가끔 언급되는 욕설이 낳은 큰 사건을 기억한다. 1984년 10월, 당시 30대 중반 녹색당 연방의회의 의원이었던 요스카 피셔는 보수당 기사련(CSU) 출신으로 본회의의 의사진행을 맡았던, 아버지뻘 되는 연방의회 부의장 리하르트 슈티클렌을 향해 ‘결론적으로, 의장님, 당신은 똥XX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동물의 배설기관을 빗댄 이 욕설은 의회의 속기록에서 삭제되었고, 피셔는 이틀 동안 본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되는 징계를 받았다. 슈티클렌은 후에 연방의회 의장, 피셔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에서 부총리 겸 외상이 되었다.

정치인의 비속어나 욕설로 문제가 된 이 두 사건을 보면 발설자가 자기 발언을 스스로 인지하는 정도와 이로 말미암아 생긴 사회적 파장에 대한 책임 문제가 먼저 등장한다. 희곡 <토르콰토 타소> 속에서 괴테는 궁중시인 타소의 입을 빌려 ‘욕설의 화살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믿는 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라고, 말이 칼이 되어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욕설이나 비속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오해가 생겼다면 발설자 스스로 먼저 사실관계를 밝히고, 곧 사과를 포함한 응분의 조치를 하면 사태는 대개 원만하게 수습된다.

그런데 바이든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미국의회를 겨냥한 비속어 ‘이 XX’가 아니라 한국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을 지목한 발언이라는 해명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한국국회는 비속어의 대상이 되지만 미국의회는 그렇지 않은가라는 비판의 소리가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대선 이후 정치적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에서 비속어에 대해 보도를 했던 MBC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겁박당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음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인간은 본디 비속어와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적 동물이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대통령은 비속어나 욕설을 아예 모르는 성인군자처럼 언행을 하라는 요구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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