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 멋진 늙음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속에는 늙은이가 없다. 핼러윈이라는 젊은이의 축제에 늙은이가 낄 리도 없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동지나 정월 대보름처럼 악귀를 쫓는 우리의 전통적인 축제도 있는데 왜 미국에서 들어온 축제에 열광해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느냐는, 비난이나 질책이 섞인 반응조차 보인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젊은이에게는 삶은 무한하고 긴 미래지만 늙은이에게는 매우 짧은 과거에 지나지 않기에 새것에 대체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젊음과 이에 둔감한 늙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지난 시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세계를 절대화해서 젊은이를 가르치려 드는 근성은 늙은이에게 일반적으로 있다. 그래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도 모두 늙게 마련이지만 누가 과연 현명한지를 묻는다. 작년 4월에 타계한 ‘진짜 어른’ 채현국 선생(효암학원 이사장)이 남긴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것을 잘 봐두어라’는 일갈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시절로 기억되는데 ‘꼰대’라는 은어가 우리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단어의 유래를 아무도 몰랐지만, 잔소리깨나 하고 책벌을 주는 선생을 주로 지칭했고 점차 늙은이 일반을 뜻하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표현이 60년을 훨씬 넘긴 오늘에도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대갈등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변치 않는 공통점을 새삼스럽게 보게 된다.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절대로 젊은이를 자신 곁에 강제로 묶어두지 마라. 변덕스럽게 대하거나 투덜거리거나 불신하지도 말라’는 <걸리버의 여행기>를 남긴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남겼던 경고가 생각난다. 똑같은 잔소리를 녹음기를 틀어놓듯이 반복하지 말고 권위가 녹아들어 있는 단호함과 품위를 노인이 지녀야 하는 덕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압축된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도시화, 대가족의 해체와 핵가족화, 인구의 고령화, 직업과 노동세계의 변화, 정보사회와 디지털화 등으로 노인세대의 위상과 역할은 큰 변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학, 심리학, 보건의학적인 연구도 활발해졌고, 이를 근거로 노인을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그렇지만 노후의 건강과 연금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는 것처럼, 주로 경제적인 비용을 염두에 두고 노인 문제에 접근한다는 비판도 낳았다.

노인 문제의 출발점은 개개인의 삶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은이가 되는, 인간적인 숙명을 생각하면 문제의 출발점을 노인 개개인의 삶으로부터 찾아보는 것도 이런 접근방식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노인 문제에 대한 이러저러한 철학적 성찰은 이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었다.

이런 논의에 빠질 수 없는, 동양의 고전에 속하는, 공자의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잘 알려진 구절이 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고, 서른 살에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 망설임이 없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 남의 말을 그냥 그대로 듣게 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대로 해도 할 바를 넘어서지 않았다.” 당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대략 천명을 알게 되는 쉰 살을 넘기면서 자신의 언행을 절제와 균형 속에서 철저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년의 덕목을 이야기한다.

공자보다 480년 뒤에 태어난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서양의 고전에 속하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나이가 들면 활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공공의 복리를 위해 활동하며 학문적 수양의 중요성을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체력이 떨어져 노년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체력을 단련하고 근면하고 성실하며, 또 원숙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쾌락이 사라지니 노년이 싫다는 사람들에게 충동적인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라고 권유한다.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노년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모두가 겪는 일이기에, 자연의 법칙을 따라 이를 담담하게 맞이하라고 충고한다.

노년에 사회봉사활동과 평생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자립적인 삶을 꾸려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정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라는 이런 이야기는 오래 살고 싶으면서도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노년을 위한 훌륭한 조언임은 틀림없다. 노년에 ‘얻어지는 연륜’을 그동안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가정과 시민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적극 활용하라고 노인학의 여러 연구도 거듭 강조한다.

헤르만 헤세도 “늙음은 젊음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성스러운 과제다. (…) 사람의 품위에 걸맞게 늙고, 나이에 걸맞은 자세 또는 지혜를 지닌다는 것은 하나의 어려운 예술이다. (…) 노년의 의미를 충족시키고 이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늙거나 젊거나를 막론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나날의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되고 삶을 기만하게 된다”고 <노년에 대하여>(1952)에서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늙음의 근원에 놓인 문제에 대한 성찰보다는 어떻게 늙음을 지연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이를 이겨내는 방법이 없는가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는 노화방지나 항노화(anti-aging)를 위한 온갖 상품과 이에 대한 광고는 넘쳐나고, 노화도 일종의 질병이기에 머지않아 극복할 수 있다는 과학기사도 나돈다. 한편에서는 불로장생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첨단과학에 거는 기대를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학대와 노후빈곤에 따른 자살과 같은 비극은 여전한데 전통적인 경로사상이나 효도를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한다.

가장 두려운 건 추하게 늙는 것

학제 간의 새로운 학문으로서 성장한 노인학의 그간 이룬 성과도 물론 작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노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의 노인은 물론, 미래의 노인인 오늘의 젊은이도 함께 바람직한 노년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묻는 진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의 간결한 시 한 편이 이 고민이 담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비록 작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제목의 시다. 노년의 삶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동서양의 철인이나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큰 화두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다.

“나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 늙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추하게 늙는 것은 두렵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욕심을 버리긴커녕 더욱 큰 욕심에 힘들어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또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그런 노인이 될까 정말 두렵다/ 나는 정말 멋지게 늙고 싶다/ 육체적으론 늙었지만 정신적으론 복학한 대학생 정도로 살고 싶다/ 늘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사랑으로 넘치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대하고 부지런한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어 늘 어떤 도움을 어떤 방식으로 줄까 고민하고 싶다/ 어른대접 안 한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대접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그런 근사한 노인이 되고 싶다/ 할 일이 너무 많아 눈감을 시간도 없다는 불평을 하면서 하도 오라는 데가 많아 집사람과 수시로 행방불명이 되는 정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고 부러워할 수 있게 멋지게 늙고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가운데 나 자신은 미소를 지으며 살고 싶다.”

미루어 보건대 노추(老醜)와 노욕(老慾)에 찌들며 오늘을 사는 군상의 구체적인 여러 모습을 떠올리면서 시인은 이 시를 남겼을 것이다. 시를 읽으면서 나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시는 단지 앞으로 남은 날이 많지 않은 노인을 위한 경구(警句)만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늙음에 대해서 성찰해야 하는 젊은이를 위한 아름다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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