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팀, 환율 안정에 직을 걸라

오관철 경제에디터

‘지금 경제전망을 하는 사람은 바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상황이 예측불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보다 정도가 심각해 보인다. 환율과 주가는 극심한 널뛰기 장세가 이어지고 투자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상당 기간 대외경제 여건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추경호 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은 신발끈을 바짝 동여매야 할 때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오관철 경제에디터

경제팀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원·달러 환율 폭등을 막으면서 원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외생변수 영향이 크고 위기 때마다 늘 환율이 문제였다. 한국인들의 삶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환율은 1년 만에 900원 수준에서 2000원 가까이로 치솟았다. 외환시장의 위기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우선 달러 곳간을 지켜야 한다. 한국 경제가 달러 고갈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던 외환위기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위기의식 부재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이나 언론을 두고 혹자는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당시 정부의 말만 믿고 사전에 위험신호를 경고하지 못한 원죄 때문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는 정맥이나 동맥이 아니라 모세혈관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달러에 달하지만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만기 1년 이하) 비율은 40%를 넘고 있다. 40% 돌파는 10년 만으로 환율 방어에 외환보유액을 소진한다면 계속 높아질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이미 9월에만 197억달러 급감했다. 외국인들은 돈을 떼일까 하는 걱정에 외환보유액을 중요한 국가 신인도 지표로 본다.

그간 외환시장을 다루는 정부의 역량은 미덥지 못했다. 환율이 급등할 때 강달러를 탓하며 해외발 핑계로 피해 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서자 국민연금과 한국은행의 외환스와프,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와 상관관계가 높은 경상수지가 지난 8월 30억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최근 발표됐지만 정부는 일시적이며 연간기준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발언만 반복했다. 국제유가 움직임에 따라 경상수지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덮고 싶어 하는 관료들의 속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적 역량을 반영한다. 대외변수 영향이 크다 해도 재정·무역수지, 물가, 부채 등의 수준이 통제 가능 범위에 있다면 원화가 다른 아시아 통화와 비교해 유독 약세를 보일 이유는 없다. 시장 일각에서 환율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며 달러 투자를 부추기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도 정부가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정비하고 더 이상 실기와 오판이 없어야 한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가 위기 때 역점을 둬야 하는 분야가 바로 ‘금융외교’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은 주요국이 동시에 확장적 통화·재정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각자도생 시대로 주요국 간 공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글로벌 협력을 외치지만 강대국들은 마이동풍이다. 한국이 국제금융질서를 주도하긴 어렵다 해도 공조 방안을 제시하면서 중재 역할을 할 수는 있다. 다음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기 극복의 의제 설정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00억달러가 넘었지만 미국과 맺은 300억달러 통화스와프가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은 해외에 달러를 풀어야 할 때 통화스와프를 활용해 왔고,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란 점에서 단기간에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 해도 달러의 힘과 냉혹한 국제현실을 감안할 때 굳이 필요하겠느냐며 냉소적 태도를 보여선 곤란하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 의회와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경험 있는 인사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번 위기는 앞으로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가계의 삶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위기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양극화 심화 등 깊은 상처를 남긴다.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허겁지겁 위기만 수습하다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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