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목화씨는 붓뚜껑에 담겨 오지 않았다

엄민용 기자

조선의 왕들은 꽃 중의 꽃으로 목화꽃을 꼽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목화는 ‘온몸’을 다 바쳐 백성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나왔듯이 목화는 두 번 꽃을 피운다. 여름에 희거나 누런빛의 꽃이 피고, 그것이 지면 봉오리가 맺혔다가 봉오리가 터지면서 목화솜이 꽃처럼 핀다.

그 솜에서 실을 뽑기도 하고, 솜을 이불과 옷에 넣어 추위를 막았다. 또 목홧대는 땔감으로 쓰고, 목화의 씨로는 기름을 짜 식용유로 썼다. 이 기름을 ‘면실유’라 한다. 면실유의 찌꺼기로는 빨랫비누를 만들었다.

목화는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목화꽃이 지고 나서 솜이 터지기 전의 봉오리는 그 맛이 달큼해서 먹을 만하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다래’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랫과 덩굴나무의 열매, 즉 산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추 모양의 열매’인 다래가 더 익숙하다. 이 때문에 목화의 봉오리만을 가리켜 ‘목화다래’나 ‘실다래’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목화다래가 문화어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 국어사전들은 산속에서 나는 것과 목화밭에서 나는 것 모두를 ‘다래’로만 쓰도록 하고 있다.

목화를 얘기할 때면 꼭 나오는 사람이 있다. 문익점이다. 또 문익점 하면 ‘붓뚜껑’이 떠오른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를 보급했다’는 얘기는 거의 ‘국민 상식’이다. 그러나 중국 고서 어디에도 ‘원나라가 목화씨를 반출 금지 품목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없고, 우리 문헌에도 붓뚜껑에 숨겨 왔다는 기록이 없다. 얻어 왔다거나 주머니에 넣어 왔다는 기록만 보인다.

더욱이 백제시대 때의 절 유적에서 면직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문익점이 ‘최초 목화 보급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문익점이 목화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조선왕조실록 등이 이를 증명한다.

목화씨를 담아 왔다는 ‘붓뚜껑’도 바른말이 아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은 “붓촉에 끼워 두는 뚜껑”을 뜻하는 말로는 ‘붓두껍’만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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