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가는 길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유럽연합은 공동체성이 견고해지는 동안 끊임없이 도전을 맞이했다. 전 세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시대에는 더 그렇다. 지난 2월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10개월을 향해가고 있다. 전쟁은 올 한 해 내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밀접한 데다 관계설정 등 민감한 사안이 걸려 있었던 유럽연합에는 더욱 그러하다. 주요 가치로 협력과 평화를 위시하며 지켜온 유럽연합의 공동체성 역시 다시 주목받았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동체와 개별 국가 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힌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유럽연합을 향한 우려 어린 시선은 늘 존재했었다. 그러던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얽힌 연합 내부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그동안 추구했던 공동체의 기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십 년 전 새로운 세계질서의 대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던 유럽연합은 역풍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기세다.

브렉시트로 고초를 겪었지만 돌이켜보면 유럽연합은 창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전례 없는 지역공동체이다. 스물일곱 개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이 하나의 기치를 세우고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존중받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유럽연합을 이루는 개별 회원국들뿐 아니라 연합 자체가 유럽을 대표하는 일련의 조직으로 부각되었다. 유럽연합은 창설 계기였던 경제뿐 아니라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별 국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유럽연합은 실체를 띤 유의미한 조직으로 변화해나가는가 싶었다.

얼마 전 난민을 태운 배의 이탈리아 입항이 거부되자 프랑스가 난민 200여명을 수용하기로 한 일이 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두 나라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다. 한편 난민 수용 문제는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서 오래된 이슈이므로, 이런 신경전을 드문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갈등 이슈에 대해 국가 간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 애쓴다. 난민 문제에 관해서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망명신청센터 설치나 역외 입국관리소 설치 등 공동 대응책 마련에 힘썼다. 그러나 평화와 공동체의 번영이라는 추상적 기조와 구속력 없는 합의문은 매번 유럽연합의 발목을 잡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럽으로 몰려든 난민 440만여명은 연합에도 회원국들에도 다루기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연합 사람들은 전에 없던 불안정성을 실감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과 이로 인한 가스 공급 부족은 올해 내내 유럽연합 국가들에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였고,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난방 비상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개별 국가들은 겨울 추위를 벌써부터 실감하고 있다. 연합을 유지하던 질서로는 작동하지 않는 국가별 인프라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경제적 변화는 물론이고, 테러나 전쟁, 생존에 대한 위험을 감지한다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런 대중의 마음을 이용한 포퓰리즘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이런 와중에 2025년 5000명 규모로 창설될 유럽연합의 첫 번째 자체 평화유지군인 신속대응군도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다. 신속대응군은 구조나 대피, 지역 안정화에 우선 투입되며, 첫 임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도 들린다. 신속대응군이 창설되면 이를 이끄는 첫 번째 회원국은 독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태생적으로 군사 안보 영역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유럽연합으로서는 이를 계기로 공동체가 앞세웠던 가치들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 10월 말 대통령궁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과 경제 격변, 그 모든 위험에서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이며, 어려운 시대를 지나가게 하는 것은 결국 갈등회복력’이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에게는 위기가 아닌 때가 드물었고, 도전 거리가 없었던 때가 적었으며, 숙명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늘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말처럼, 세상이 불확실할수록 우리는 공동의 길에 대해 확신하며, 겸허하게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각자 자신의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며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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