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두 아버지는 두 시간 내내 울었다

김민아 논설실장
이태원 참사 49일째인 지난 16일 서울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 유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태원 참사 49일째인 지난 16일 서울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 유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최정주씨(53)는 20년 넘게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일해왔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다. 딸 최유진씨(2000년생)는 큰 기쁨이었다. 당차고, 똑똑하고, 자기 길을 알아서 가는 아이였다. 아빠를 따라 음악을 시작한 것도 내심 반가웠다. 유진씨는 제주도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뉴욕대 ‘퍼포먼스 스터디스’ 과정에 들어갔다. 공연예술의 모든 것을 배우는 학과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서울에 머물며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한계를 느꼈다. 휴학하고 작·편곡을 공부했다. 이태원역 인근에 원룸 겸 작업실도 얻었다. 지난 8월엔 자작곡을 노래해 음원을 냈다. 제목은 <Love me right>. ‘날 제대로 사랑해보라’는 뜻이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유진씨는 2023년 뉴욕대에 복학할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 두 곡 정도 더 음원을 내고 싶었다. 지난 10월26일, 딸은 한남동 본가에 들렀다. 저녁을 먹으며 두 번째 음원이 곧 나온다고 신나했다. 제목은 <Off course>, ‘항로 이탈’. 유진씨는 자작곡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한번 들어봐줘’라며 오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애 많이 썼다”며 격려해줬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큰길까지 바래다주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딸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몰랐다.

사흘 후인 10월29일 밤 11시55분. 최정주씨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서울특별시청]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호텔 앞 긴급사고로 교통통제 중.’ 딸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딸의 작업실로 달려갔다. 비어 있었다. 유진씨 어머니가 딸 친구들을 수소문했다. 유진씨가 밤 9시50분쯤 친구 A씨를 만나러 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10월30일 새벽 2시. 순천향대병원 앞에서 만난 A씨는 “죄송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둘은 밤 10시 이태원역 인근에서 만났는데 인파에 놀라 10분 만에 자리를 떴다. 그러다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정신을 잃은 A씨가 깨어나보니 10시40분이었다. 10시50분쯤 유진씨 발신으로 전화가 걸려왔으나, 10초 정도 아무런 말도 없다가 끊겼다고 했다.

새벽 2시39분. 최정주씨 전화가 울렸다. “경찰입니다. 최유진양 보호자인가요?” 다급히 딸의 상태를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루 두세 번은 왈칵 눈물이 나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이가 떠오르고….” 어느 날 KBS에서 유족 인터뷰를 접했다. 배우 이지한씨 아버지 이종철씨였다. 인터뷰한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아이를 잃은 아빠인데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종철씨를 행주산성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두 아버지는 한쪽 구석에서 두 시간 내내 껴안고 울었다.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알려주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이 없어요. 예방도 못하더니, 일이 일어난 후에도 사고에 대한 대응이나 분향소 문제 등이 상식적이지 않아요. 국무총리는 기자회견 하며 농담을 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폼나게’ 운운하고…. 또 다른 가해였습니다.”

최유진씨가 다닌 학교들의 반응은 달랐다. 고인이 졸업한 ‘NLCS제주’에선 연례 아트페스티벌 때 ‘최유진의 날’을 정해 추모하고, 음악실 한 곳을 ‘최유진의 방’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고인이 다녔던 뉴욕대에서도 학교 인근 워싱턴스퀘어파크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유진씨가 과제로 낸 에세이를 대학 건물에 전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참사 49일째인 지난 16일 유가족협의회가 주관해 치른 시민 추모제의 주제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였다. 유족들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어요. 이름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라니요. 처음부터 국가가 제대로 위로해줬다면 이렇게 안 했겠죠. 왜 유족들이 나서 목청껏 외쳐야만 그 소리가 들리는지 이해 못하겠어요. 10대 생존자가 악성 댓글로 상처받고 유명을 달리했잖아요. 살아 있는 아이조차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15년 지기 유진이를 잃은 A에게도 자책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습니다.”

최정주씨의 삶은 ‘10월29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족들은 지금 우리 정부와 사회가 보이는 모습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바로잡아야 하고, 바로잡을 겁니다.”

※ 지난 14일 최정주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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