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기득권

올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5년 되는 해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75년 되었던 해는 1467년, 세조 13년이다. 이해 5월에 ‘이시애 난’이 일어났다. 세조는 다음 해인 1468년 9월에 사망한다. ‘이시애 난’은 세조 정권의 권력구조를 마지막으로 뒤흔든 사건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세종에 이어 즉위한 문종은 불과 2년3개월 만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11세 외아들 단종이 즉위했다. 그런데 이미 세종 말년부터 수양대군은 왕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자주 그가 상대했다. 세종은 노환 중이었고, 세자 문종은 자주 아팠기 때문이다. 1452년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일종의 권력 공백 상태가 되었다. 결국 다음 해 1453년에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획득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수양대군의 유혈 쿠데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가 권력을 획득했을 뿐 왕의 자리까지 차지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2년 뒤,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즉위했다. 권력 현상의 논리로만 보면 이런 진행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조선이 건국 이후 60년 넘게 축적해온 정치적 명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조 즉위에 반발해서 ‘사육신 사건’이 벌어졌다. 세조 즉위 다음 해, 그를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일어난 사건이다. 세조 즉위는 정치 권력과 정치적 명분이 충돌한 사건이다. 늘 그렇듯 권력 편에 선 사람들과, 관직과 목숨을 버려 명분을 고수한 사람들이 나왔다. 세조는 정치적 파국 때마다 공신을 책봉했다. 우리가 ‘훈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조는 그들에게 더 높은 관직, 땅, 그리고 노비를 주었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폭력과 권력을 행사했다. 세조는 철저히 ‘공신들’ 중심으로 정치를 했다.

시간이 흐르자 세조는 공신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북방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다. 영리하게도 이시애는 세조의 오른팔 왼팔이나 다름없는 한명회·신숙주가 자신과 내통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세조는 두 사람을 즉각 감금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곧 밝혀졌지만, 이전의 유대가 회복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조 권력의 최후 승리자는 세조가 아닌 그의 공신들이다. 그들은 세조가 죽고도 자신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그 자식들 대까지 권력을 누렸다.

새로 성립된 권력은 흔히 ‘개혁’을 시도한다. 권력의 존재감을 즉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개혁’의 이름으로 잠재적 경쟁자들을 빠르고 공공연하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개혁이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짜 개혁은 특정 대상을 제압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에 대한 대단히 높은 수준의 이해와 정교하고 꾸준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가까스로 달성될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이어지려면 대의명분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만 그런 것도,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떤 사회나 3~4세대가 지나면 나타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 교육, 연금에 대한 3대 개혁 추진을 선언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러 해 전,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서 사측에 자기 자녀의 일자리 대물림을 요구했다는 뉴스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옳지 못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온 사회가 기득권 추구에 매진하는데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만 예외적으로 도덕적 수준이 높을 리 없다. 한 가지 의문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이 한국 사회에서 공권력부터 동원해서 제일 먼저 해체시켜 마땅한 기득권인가 하는 점이다. 현 정부의 개혁 추진이 가뜩이나 강력한 엘리트 관료집단의 기득권만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