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백육십오일

오은 시인

새해에는 결심하게 된다. 작년에 미진한 느낌으로 남았던 일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마음, 작년에도 실패한 금연을 올해는 성공하겠다는 마음, 아무리 바빠도 주변을 챙기겠다는 마음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미련을 해소하고 새 뜻을 펼치기 위하여, 결심은 보통 ‘하겠다’나 ‘하지 않겠다’ 형태로 서게 마련이다. 어떤 것을 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어떤 것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헤어질 결심은 만나지 않을 결심이기도 하다. 굳은 결심은 일상에서 작심(作心)으로 뿌리내린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새해와 가장 가까운 사자성어는 복을 비는 인사말 ‘근하신년(謹賀新年)’일 것이다. 삼가 새해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빈다. 그다음으로 가까운 것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일 텐데, 이는 우리에게서 나로 돌아온 사람이 이맘때쯤 어김없이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하겠다는 의욕만 앞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작심은 맥없이 풀어지고 만다. 결심의 취약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표가 너무 커다래서이기도 하다. 금연, 일기 쓰기, 매일 30분 이상 운동하기 등 어떤 목표는 달성 여부가 하루 만에 판가름 나기도 한다.

음력설과 3월1일 등 몇몇 안전장치가 있지만, 결심이 결실로 연결되지 못하면 좌절감이 찾아온다. 자기부정으로 괴로워하다가 모른 척하거나 책임 전가하기 등을 통해 정신 승리를 거두고 나면, 처음의 결심이 가물가물해진다. 그쯤 되면 또다시 생의 관성에 심신을 맡기고 살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안 하기보다는 줄이기, 반드시 하기보다는 되도록 하기 등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어쩐지 비겁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의지를 스스로 평가 절하했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연말연시에 오성은의 첫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은행나무, 2022)을 읽으며 ‘하겠다는 마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각 단편에는 폐선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는 노인, 남아서 소중한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 가방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음으로써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창고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아내 앞에서 그렇다면 자신은 라디오가 되겠다고 대꾸하는 남편도 있다. 얼핏 무기력하거나 무모해 보이는 이들은 다들 뭔가를 꿈꾸고 있다. 잠잠한 수면 아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듯, 되지 못한 이들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되겠다는 마음의 중심에는 간절함이 있다. 언뜻 ‘하다’보다 ‘되다’는 더 거창한 듯하지만, 되는 일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과학자가 되는 일보다는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보다는 과학과 한 발짝 가까워지는 사람이 되는 일이 쉽다. 쉽지만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되지 않았기에 늘 도정(道程)에 있을 수 있다.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느긋해지는 것이다. 삶은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지 않다.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면 된다”라는 말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을 가능케 해준 행운, 실패 속에 있던 작은 성취 같은 것을 생각하다 다음 문장을 만났다.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워크룸프레스, 2022)을 읽던 중이었다. “상실 안에 구원이 있고, 불행 중 행복이 있을지니, 시인들은 모두 이 준엄하고 가혹한 진실을 꽤 일찍 발견한다.” 어쩌면 되겠다는 마음은 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별수 없이 잃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상실로 끝나지 않고 그리움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아직 되는 과정임을 깨닫곤 할 것이다. 계묘년,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면 작심삼일이 작심삼백육십오일이 되지 않을까.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