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마저 찍어내겠다는 ‘윤석열 정치’

김민아 논설실장
지난해 2월 25일 열린 제20대 대선 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뒤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2월 25일 열린 제20대 대선 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뒤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충격의 ‘수인한도(受忍限度)’가 높아졌다고 할까. 하지만 엊그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 중인 안철수 후보를 향해 “적”이라 표현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아직 멀었다. ‘통큰’ 윤 대통령을 이해하기엔 내 간덩이가 너무 작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경향신문과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최근 안 후보의 ‘윤(석열)·안(철수) 연대’ 표현과 관련해 참모들에게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특정 후보와 연대한다는 주장은 극히 비상식적이며,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실체도 없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 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안 후보가 “윤핵관의 지휘자는 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을 비판한 데 대한 반박이다.

윤 대통령은 짐짓 국정 최고책임자·국군통수권자의 권위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의 초조감을 눈치 못 챌 이는 없다. ‘민심 1위’ 유승민 전 의원을 찍어내고, ‘당심 1위’ 나경원 전 의원까지 찍어냈으면, 마침내 ‘친윤’ 김기현 후보가 뜰 법도 한데 이번에는 안 후보에 뒤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소매를 걷고 나선 것이다. ‘전교 꼴등 윤핵관이 1등 되는 법/ 1등을 죽인다/ 다음 1등을 죽인다/ 다다음 1등을 죽인다’(김웅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유명 소설 제목을 원용하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윤석열’이다.

윤 대통령의 노골적 당무 개입을 두고 정당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그런데 윤리적·도덕적 비판에만 그칠 사안일까. 윤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권은 ‘자유’ ‘법치’의 가치를 표방하고 이 단어들을 즐겨 쓴다. 정당법을 보자. 제49조(당대표경선등의 자유방해죄) 1항은 ‘당대표 경선 등과 관련해 각 호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호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또는 당선인을 폭행·협박 또는 유인하거나 체포·감금한 자’이고, 2호는 ‘선거운동 또는 교통을 방해하거나 위계·사술 그 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당대표 경선 등의 자유를 방해한 자’이다. 안 후보를 적으로 규정한 것이 협박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당대표 경선의 자유’를 방해”한 데 해당할 소지는 없을까.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소추 특권을 누리지만, 의문은 남는다. 형사소추가 면제된다고, 위법 소지가 있는 언행을 마음대로 해도 되나. 그것도 검찰총장을 지낸 법률가가, 자유와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형사소추에서 자유롭지 않은 윤핵관들은 또 어떤가.

명칭이야 윤·안 연대든 아니든, 지난 대선에서 안 후보는 단일화로 윤 대통령을 도왔다. 윤 대통령 스스로 ‘개국공신’임을 인정했기에 대통령직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한 것 아니었나. 그 정도 인연을 맺은 이조차 마음에 안 든다고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할 정도라면, 윤 대통령 머릿속에 야당은 어떤 존재이겠는가. 취임 후 한 번도 제1야당 대표와 회동하지 않은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 중 “UAE의 적은 이란” 발언으로 이란의 반발을 사는 등 외교적 논란을 빚었다. 워낙 다변(多辯)이다보니 실언했으리라, 여긴 이들이 많았다. 이제 와서 보니 실언이 아니었던 듯싶다. 윤 대통령 머릿속에선 ‘일심동체’가 아니면 ‘적’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모든 관계를 피아·선악·적과 동지로 보는 윤 대통령의 이분법 속에 ‘진짜 정치’가 자랄 토양은 없어 보인다. 정치란 근본적으로 제3의 공간·중간지대·회색지대 인정을 전제로 성립한다. 그럴 때만, 그 중립의 영역을 사이에 두고 양보·조정·협상·타협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원리를 외면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전투다.

‘정치인 안철수’의 정책에 공감한 적이 없다. 특히 국회의원 정수를 100명 줄이자고 했을 때, 대의민주주의 운영원리에 대한 무지에 놀랐다. 정당을 만들었다 합쳤다 깼다, 입당했다 탈당했다 되풀이하는 정치스타일 역시 이해불가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긴요한 것은, 3월8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무대에 김기현 말고 의미 있는 후보 한 명이 더 서 있는 장면이다. 버텨라,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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