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라는 판도라의 상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규제기관인 금융위가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고, 금산분리 완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금산분리는 금융·비금융 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은행의 비금융회사 지배와 비금융회사의 은행 지배는 은행법에서 금지되고, 보험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도 개별법에 따라 부수업무, 위탁업무 및 자회사 출자 규제에 대한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런 금산분리 규제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금융기관이라는 본질에 있다. 금융기관들이 고객의 예치금을 자산으로 운용함으로써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부실은 경제위기로 전이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소유지배에 대한 규제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통해, 사전적으로 이런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금융규제기관 본연의 임무이고,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금산분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의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는 비대칭적이다.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체제에 속하지 않는 산업자본은 비은행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으며 의결권만 제한받고 있다. 그런데 지주회사체제에 속하지 않는 산업자본이 비은행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에 오히려 맹점이 있다. 이 맹점은 이미 동양그룹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2년 금융권 대출이 완전히 끊긴 동양은 고금리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을 대폭 늘려 연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동양그룹에 남은 자금조달 창구는 경영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동양증권’뿐이었다. 2013년 금융당국은 10월부터 증권사가 투자부적격 등급 계열사의 채권을 파는 일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고, 새 규정 시행을 하루 앞둔 9월30일에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3개사는 동시에 법정관리 신청을 공시했으며 10월1일에는 “우린 걱정 말라”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도 뒤따랐다.

동양증권 제주지점의 한 직원은 10월2일 ‘제 고객님들 돈을 꼭 상환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차 안에서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매입한 개인투자자가 약 4만1000명이고 피해금액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제2의 동양그룹 사태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40년에 이미 투자회사법(Investment Company Act)을 통해, 금융이나 비금융 상관없이 자회사 지분을 50% 미만으로 가지는 지배회사는 투자회사에 준하는 규제를 받도록 한 바 있다. 이런 입법 정신을 최소한이나만 반영해,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에 대해 그 금융기관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금산분리 규제의 맹점은 보험업법에도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에 거의 모든 자산을 ‘몰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보험업법 감독규정은 여전히 건재하다. 계열사 위험이 보험회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보험업법의 행위 규제가 유명무실한 것이다. 동양증권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경제적 파급을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한 리스크 관리를 국회도 금융위도 방관하고 있다.

금융환경이 바뀌면,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정상적인 금융규제기관의 모습이다. 그러나 핀테크 육성을 핑계로 인터넷전문은행을 허용하면서도, 이로 인해 야기될 금융 위험에 대한 관리는 없었다. 금융 위험을 방관하면서 도입한 인터넷전문은행이 과연 핀테크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었는가?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회사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면, 이미 금산분리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비지주회사 재벌 소유의 보험회사나 증권회사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금산분리 완화는 결국 지배력 전이를 통해 내수시장에서 손쉬운 돈벌이만 유인할 것이다. 이런 유인기제는 금융기관의 본연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금융-비금융 복합 리스크는 확대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산분리 완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강화와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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