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목 자리돔과 모슬포 자리돔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지난 1월 말부터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음식에 관심이 많다보니 제주 지역 특색 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고 있다. 몸국, 멜국, 장태국, 빙떡, 오메기술 등 제주 지역 전통 음식은 정말 끝이 없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제주 음식은 자리물회다. 이전에는 자리물회를 즐기지는 않았다. 뭍사람인 나에게는 제주인의 솔푸드라는 자리물회가 낯설었다. 제주도에서도 몇번 먹어봤지만 맛이 성게가 들어간 전복물회만 못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그랬던 내가 자리물회를 즐기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내 숙소는 서귀포시 보목동인데 이곳은 자리돔이 유명하다. 숙소 근처 보목항을 산책하면 2월인데도 자리돔을 배에서 포구에 내리는 모습을 이따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리돔은 보리 이삭이 핀다는 4월부터 7월이 제철이다. 나는 자리돔 대신 겨울이 제철인 부시리를 주로 먹었다. 하지만 가는 식당마다 손님들이 자리물회를 즐기는 것을 보고 나도 호기심에 따라 시켜봤다.

보목 자리물회는 2월인데도 참 맛났다. 된장에 풀어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고 자리돔도 부드럽게 씹혔다. 제주사람처럼 제피와 빙초산도 넣어 먹으니 더 별미처럼 느껴졌다. 봄이 아니어도 자리물회가 맛난 것은 보목동의 기후 덕분이다. 보목동은 겨울 북서풍을 한라산이 막아줘 바다가 잔잔하고 따뜻하다. 보목 자리돔은 이런 바다에서 자라 작고 부드러워 물회로 제격이다.

보목동과 함께 자리돔으로 유명한 제주 지역은 서귀포 대정읍 모슬포다. 같은 서귀포라지만 대정은 제주시 김녕과 함께 제주에서도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조류도 거세다. 자리돔은 조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습성이 있어 모슬포 자리돔은 보목보다 훨씬 더 씨알이 굵다. 그래서 모슬포 자리돔은 뼈가 굵어 고소하다. 보목에서 이런 말을 듣고 모슬포 자리물회 맛이 궁금해 모슬포를 찾아갔다.

찾아간 모슬포항은 보목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또 모슬포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칼바람을 맞으며 모슬포항을 뒤졌지만 자리돔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식당마다 겨울철 자리돔은 너무 작아 먹을 것이 없어 5월이나 돼야 물회를 판다고 했다. 모슬포 자리물회를 못 먹어 아쉬웠지만 서울과 전혀 다른 쫄깃한 식감의 대방어회를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리돔에 붙는 수식어를 단순히 ‘제주’라고만 알았다. 그런데 서귀포에 살면서 ‘보목’과 ‘모슬포’라는 한 단계 깊은 미각의 수식어를 알게 됐다. 거기에 보목과 모슬포의 완전히 상반된 조류와 바람이 자리돔 맛을 돋운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돌담 하나를 두고 자란 같은 품종의 포도로 만든 두 와인의 맛이 오묘하게 달라지는 테루아의 조화를 겨울 서귀포 바다에서 느낀 것이다.

그렇다면 보목과 모슬포 말고 바람 센 김녕이나 성산의 자리물회는 어떤 맛일까? 또 이 지역은 어떤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과 연관된 스토리는 없을까? 늦봄에 제주의 포구를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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