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박선화 한신대 교수

남편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 아이도 있다고 한다. 언어로는 표현 못할 참담한 나날이겠지만 30여년 결혼생활에 이혼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재산분할 결과 60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부부의 총재산은 5억원 정도인데, 유책사유도 없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1% 내외라는 것이다. 법의 문제일까. 판결의 문제일까.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노소영씨가 수년간의 이혼소송 끝에 받게 된 판결 금액이 부부 재산의 1.2%라고 한다.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분류되어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2022년 기준 가구당 평균자산 5억원 수준으로 환산할 때, 4억8000만원은 개인 유산으로, 공동으로 모은 재산은 2000만원 정도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결혼 생활 34년간.

특정 재벌가의 가정사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재산 형성 과정이나 각자의 기여도를 알지 못하거니와 1.2%도 언감생심의 금액이라 나 같은 서민이 걱정할 생계문제도 아니다. 또한 100년 인생시대에 걸맞지 않은 전통적, 종교적 잣대로 타인의 사생활에 개입할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 가정 속에서 형성되는 유·무형의 가치와 그 분할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법은 여전히 결혼을 가부장적 경제중심의 구조로, 배우자는 그에 딸린 식솔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국가·사회 집단과 마찬가지로 가정 역시 드러나는 경제 활동만이 아니라 성과가 명확하지 않은 일들과 취약자를 위해 삶의 일정 부분을 희생하는 존재와 함께 유지된다. 육아와 교육, 가족의 매 끼니와 쾌적한 생활환경, 양가 노인 돌봄이나 집안의 온갖 친·인척 대소사, 이를 위한 온갖 부수적인 살림살이 계획과 잡일들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돈 버는 일도 고된 삶의 과정이지만, 가정일은 일과 휴식의 구분조차 없는 연속된 노동이다.

또한 부부 한쪽이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이를 함부로 낭비하거나 탕진하지 않도록, 경제생활을 주도적으로 하는 이가 직무에 충실하여 직장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안정된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의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주가 홀로 분투하고 경영효율화를 외쳐봐야 조직구성원의 협조가 없으면 기업이 존속될 수 없기에, 공동의 노력으로 창출·유지되는 성과가 모든 구성원에게 적절하게 배당·분배되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종종 외국 재벌들의 천문학적 이혼 비용, 그로 인해 갑자기 세계 재벌 순위에 오르는 전 배우자들이 화제가 된다. 그들이 더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할 줄 모르거나, 그들의 부인들이 한국 여성들보다 더 훌륭한 인품에 재산 증식에도 큰 기여를 해서는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계약 속에서 서로의 헌신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하는 것이고, 신분과 상관없이 동일한 잣대로 법률이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 역시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러한 역할에 대한 인정 수준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여전히 돈과 법 권력자들 간의 친밀감만은 넘어서기 어려운 것일까.

2030여성 중 4%만이 결혼이나 출산을 필수로 생각하고, 출생률은 0.7명대로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여성들은 왜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엄마들은 왜 그토록 자녀 교육에 병적으로 집착할까. 결혼과 육아를 통해 180도 변하는 삶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인생에서 상실된 것들을 자녀를 통해 독하게 보상받거나, 완전히 회피하거나. 가족을 위해 노력한 인고의 시간들이 경제권자의 변심에 퇴직금 몇 푼 받고 잘리는 서글픈 직장인보다 못한 사회라면. 최근 법조인 자녀의 학폭 문제처럼, 법이 더 힘세고 더 강한 권력자들을 보호하는 사회라면.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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