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인가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기후환경운동 진영 안에서 진행 중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과연 그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이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건 원론적인 가설이지만 현실에선 종종 어긋난다. 가스 전기 유류세 등 에너지 요금 상승은 가장 많이 쓰는 계층엔 큰 압력이 되지 않는 반면 적게 쓰는 계층일수록 고통과 비참을 수반한다. 필수재의 요금이 오르면 한계 소비층은 다른 데서 소비를 줄인다. 이 정책의 목표가 원가 인상을 요금에 반영하라는 시장의 상품화 요구가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공공성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라면, 일괄 요금 인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체 소비량을 줄이는 데는 덜 효과적이면서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옥스팜 자료에 따르면 1990∼2015년간 누적탄소배출량 중 소득 상위 10%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52%를 배출한 반면 하위 50%는 단 7%만을 배출했다. 2021년 20대 기업은 국민 전체 1500만가구가 쓰는 전기량보다 10%를 더 썼다. 그중에 1위는 삼성전자로, 1개 기업이 쓴 전력량(25.8TWh)이 서울시민 전체가 쓴 가정용 전력사용량(14.6TWh)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1.76배에 달한다. 하지만 전력사용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전력단가는 더 낮아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상위 5개 기업이 내는 전기료는 당해 전체 산업용 전기료 평균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의 소비와 요금을 연동시키겠다는 정책이라면 우선 향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게다가 지금 전기요금 인상 압력은 어디서 가장 크게 오는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전기를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으로 보라는 시장의 압력이다. 특히 전기요금 ‘현실화’를 계속 압박하는 건 주식시장이다. 영업 실적과 재무구조가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금융이 산업을 호령하고, 산업이 금융을 위해 돌아가는 금융화 시대의 ‘거꾸로 선 경제’는 에너지 산업에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 한국전력이 ‘목표 주가’에 도달하고, 투자자들이 불안하지 않게 적자를 해소하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국가가 개입하라는 것이다. 에너지 요금을 정치적 논리로 풀지 말라는 말은 그 뜻이다. 국민이 아니라 투자자 눈치를 보라는 말이다.

적자에 가려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다. 한국전력은 국가(정부, 한국산업은행)가 51%의 지분을, 해외 투자자 등 민간자본이 49%의 지분을 소유한 ‘주식회사’다.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에게 지분만큼 배당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의 요구는 이익이다. 기업이 영업 이익을 내려면 매출 상승이나 원가 절감이 있어야 한다. 한전의 매출 상승은 곧 전력 소비 증가를 의미한다. 게다가 그동안 우회적 민영화 방식으로 SK, GS, 포스코 등 대기업이 참여한 민자 발전사들이 전력 시장에서 야금야금 점유한 비율이 40%에 달한다. 최근 한전 적자의 큰 원인 중에는 민자 발전사로부터의 전력 구매비용 상승이 있다.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동안에도, 이들 발전사들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요금 인상은 전력 소비를 줄이는 환경주의적 목표가 아니라 금융자본과 에너지 기업의 돈벌이에 더 기여한다.

적어도 공공정책이라면 기업이나 시장, 투자자의 현실이 아니라 민중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나오는 전기요금 ‘현실화’는 누구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고금리 인플레이션 속에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실업과 노동 불안정성은 증대되며, 시민권과 노동권은 공격받고 약화되고 있는 현실, 그나마 빈약했던 사회복지도 하나씩 와해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공동체적 상호부조도 깨어진 지 오래인 이런 현실에서, 공공요금을 일제히 올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에너지 요금 인상은 강력한 인플레이션 촉진 정책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기후정의운동은 ‘저렴한 에너지’를 대표적인 기후 부정의로 지목하고 비판해왔다. 그 이유는 저렴한 에너지 뒤에 저렴한 노동, 저렴한 토지, 저렴한 자원, 저렴한 식민지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저자들이 밝히는 것처럼 ‘저렴화’의 본질은 ‘저비용’이 아니라 ‘폭력’에 있다. 그 비판은 생명을 상품의 회로에 집어넣어 싼값의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폭력의 구조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원가를 반영한 ‘적정 가격’이 그 폭력을 없앨 수는 없다. 생명과 노동을 존엄하게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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