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자원’은 없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2월27일은 오글랄라 라코타 부족과 미국 인디언 운동(AIM) 회원들이 사우스 다코타주의 운디드니 언덕을 점거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73년 2월27일부터 5월8일까지 71일간 200여명의 오글랄라 라코타들은 부족 의회와 연방 정부의 부패, 공동체를 위협하는 추장의 폭력, 잇단 인종차별적 범죄행위에 저항하는 투쟁을 감행했다. 미국 연방 정부는 병력과 저격수를 투입하여 도로를 차단하고 식량을 포함한 보급품의 전달을 막았음에도 두 달 넘게 이어진 그들의 저항은 미국 원주민 운동의 새로운 국면, 즉 ‘레드 파워’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운디드니는 들어본 바 없는, 그게 지명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이름이기 쉽다. 만약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 <운디드니에 나를 묻어주오: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통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작가인 디 브라운이 1970년 저술한 이 책은 2003년 처음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고, 백인의 시각에서 본 서부 개척사에 익숙해져 있던 독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미국 토착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 서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문제는 원저의 발간이 운디드니 점거 투쟁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당시 ‘인디언’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운디드니는 1890년 4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일어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73년의 투쟁은 원주민들이 절대 멸망하지 않았으며, 동시대인으로서 투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백인 중심의 세계에서 야만과 낙후의 상징을 뚫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고, 그들은 살아서 싸웠지만, 여전히 없어질 운명의 사람들이라 치부되곤 했다.

원주민에 대한 무시는 운디드니 점거 투쟁에 관한 서술들을 살펴보아도 드러난다. 이 사건을 두고 인권투쟁이라고 할 때, 열악한 상황의 역사적 원인보다 원주민 지도자의 일탈과 그에 따른 사망 사고를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오랜 조직화와 준비과정을 거친 것이었고, 막연하게 곤궁을 호소하는 것도, 그렇다고 백인들과의 공존을 전면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1868년 원주민들과 연방 정부 사이에 맺어진 포트 래러미 조약을 더는 위반하지 말라는 매우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었다. 이 조약이 그들에게 특히 중요했던 것은 1850년대에 맺어진 조약이 거듭 침해되는 상황에서 직접 투쟁으로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많은 원주민이 그 내용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포트 래러미 조약 이후에도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보호구역 내에 수용하는 폭력은 지속하였고, 이에 대한 저항도 이어졌다. 운디드니 점거는 부패한 원주민 지도자들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동시에 띠었고, 이에 따라 청년들과 여성들의 참여가 유독 두드러졌다. 그 투쟁의 기억은 다시 2016년 운디드니에서 멀지 않은 사우스 다코타 스탠딩록에서 벌어진 송유관 반대 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운디드니 점거 참여자 중 일부가 직접 가담하여 원주민 운동의 끊이지 않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한편 원주민들은 멸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살아서 싸우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이들을 싸우게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처럼 원주민 권리를 인정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들의 투쟁을 외면하게 만드는 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거꾸로 더는 자신들을 무시하면서 자원을 채굴하지 말라는 이들의 소리가 현대 한국인의 삶에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1850년대에 원주민들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게 만든 것은 조약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금맥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구리 광산과 우라늄 광산이 연이어 개발되면서, 송유관 건설 반대 투쟁을 비롯하여, 채굴과 그에 따른 환경오염이 저항하는 투쟁은 21세기의 오늘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원주민의 권리도 인정하고 생태계도 존중하면서 원주민들 땅에서 나오는 금, 구리, 우라늄, 석유를 지금대로 이용할 청정한 방법이 있을까? 물은 생명이요, 땅과 거기에 속한 존재들이 우리와 모두 친족이라는 원주민 삶의 방식을 존중하되 이 모든 것을 자원으로 소비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일단 그들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답 역시 최소한 그들의 투쟁을 짓밟고 자원을 채굴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한다는 위선은 버리는 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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