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보도, 인식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2022년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수 언론이 저출생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있다. 연초부터 인구 절벽을 중요한 의제로 삼은 언론사도 여럿 있었고, 각종 시사 프로그램도 저출생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4일 보건복지부가 ‘저출산 대응 2030 청년과 긴급간담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간담회 내용에 대한 언론 보도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 간담회에 대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인생 과업인데 걸림돌이 있을 뿐’이라는 전제에서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언론사가 여전히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특히 그 걸림돌로 경제적 요인을 짚고 있다는 점은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간담회 관련 기사는 “돈 때문에” 등의 표현으로 비혼, 비출산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간담회 참석 청년들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경제적 요인은 분명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작동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결혼을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요인’이라는 어려움이 제거되면 청년들은 출산과 양육을 다시 선택할까? 지난해 6월 한국 갤럽이 “저출생 현상과 대책”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출산과 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한다면 해결된다는 데 동의하는 응답이 다수였으니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20대 여성은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므로 다른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항목에 59%가 동의했다. 이 문항에 대한 여성의 전연령대 통합 동의율은 49%로 절반 가까이 된다.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면, ‘경제적 지원을 하면 출산과 양육을 할 것이다’라는 다른 세대와 성별의 막연한 낙관보다는 왜 여성들은 이렇게 반응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관련 정책이나 담론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이 취업이 어려우니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이를 액면 그대로 취업이나 경제적 사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한국 갤럽의 동일 조사에서 20·30대 여성은 경력 단절이 저출생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는 데 가장 많이 동의한 집단이었다. 보건복지부 간담회와 같은 날인 4일 열린 제38회 세계 여성의날 기념 여성대회에서는 성별임금격차와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취업을 일자리를 만드는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일자리를 얻더라도 생애 과정 내 유지하기 어려운 성차별의 문제, 즉 경력 단절이나 성별 임금 격차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관점이다. 여러 여성학 전문가들이 저출생 문제를 다룰 때 핵심 의제라고 지적했던 것은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생애 경로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다. 이는 ‘돈과 집, 취업’과 같은 문제가 젠더와 계층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이 이 문제를 다루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요인으로 결혼을 ‘미루는’ 청년이라는 전제가 다른 생애 경로를 선택하는 청년들을 비정상화하는 문제도 크다. 또한, 국민연금 고갈 등 자원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니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는 주장 역시 인간을 오로지 자원으로만 보는 시각이라 청년 세대의 거부감을 사고 있다. 아쉬운 것은 저출생 관련 의제를 구성해 온 언론사들이 이와 같은 문제를 잘 드러내고 청년 여성의 목소리를 다층적으로 담아 놓고도 정부 정책과 관련하여 보도할 때에는 기존의 관점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미혼’이 함의하는 정상가족의 인식틀이 정부와 언론 모두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출생 문제를 다루는 인식틀을 전환하는 것이 관련 의제 설정의 전제여야 한다.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향후 저출생 관련 보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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