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자강의 아쉬움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1876년 1월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같은 메이지유신의 원훈들이 사절단을 이끌고 강화도에 왔다. 강화도조약은 그로부터 단 16일 만에 체결되었다. 한국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이 조약이 매우 불평등한 것이며, 여기서부터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꽤 다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조선은 그 외교문서에 ‘황(皇)’처럼 중국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령을 거절했다. 당시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로 서로 타협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8년씩이나. 지금도 중국과 달리 한국 매스컴은 천황을 일왕이라고 쓴다. 조선이 외교를 거절하자 일본에서는 모멸을 당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정한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를 철부지 모험주의로 여기는 세력도 있었다. 이 둘이 사생결단으로 맞붙은 게 1873년 겨울의 ‘정한론 정변’이다. 비정한론파가 가까스로 이겼다. 그러니 이들은 축출된 정한론자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국교정상화가 절실했다.

거물 사절단을 맞아 신헌, 강위, 오경석 등 조선 외교관들은 분전했다. 물론 영사재판권 등 불평등한 조항이 있었으나, 조선 측 주장이 관철된 것도 많았다. “그들은(일본인들은) 조선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조선이 쉽게 허락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해리 파크스 주일 영국공사의 말은 과장이겠으나, 일본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어떻게든 판을 깨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외교가 얼마나 국내 정치에 좌지우지되는가는 최근 몇년간의 한·일관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개국시킨다는 명분으로 서양의 포함외교(砲艦外交)를 모방했지만, 실제로는 교섭이 결렬됐을 경우 조선 정벌을 단행할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또 일본 국내의 긴박한 정세로 볼 때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강경 일변도로 나설 수만은 없었다.”(김종학, ‘조일수호조규는 포함외교의 산물이었는가?’)

비정한론파라고 조선 침략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훗날 조선통감이 되는 이토 히로부미도 당시엔 비정한론파의 핵심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때부터 조선 침략을 결심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 침략 의사가 있고 없고는 우리가 부강한 나라가 되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종정연표(從政年表)>)라는 온건개화파 어윤중의 말대로 우리의 운명은 우리 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이웃 나라 혹은 상대국은 긴 역사의 한 시기에 발생한 국력의 현격한 차이에 흥분해서는 안 된다. 야욕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제해야 한다.

조선의 개화파는 필사적으로 자강을 달성해야 했다. 100년 후 그들의 후손들은 그들 못지않은 악조건하에서도 자강을 달성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자강조선(自强朝鮮)’을 달성했다면, 일본으로 하여금 욕심내다가도 멈칫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조선판 메이지유신’을 꿈꿨던 개화파가 일본에 기대한 것을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문제는 그들이 수구파 이상으로 분열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강철대오’로 ‘자강조선’ 건설에 매진해도 부족할 판에 이전투구를 벌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자강을 이룬 일본은 자강에 만족했어야 했다. 긴 역사를 가진 민족답게 국가의 흥망성쇠는 변화무쌍하다는 심모원려가 있어야 했다. 그런 대전략가가 없었다. 일본에 선행을 하라는 게 아니다. 미주(美酒)인 줄 알고 호기롭게 마셨으나 사실은 독약을 제 손으로 삼킨 것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일관계의 비극은 이렇게 벌어진 일이었고, 그 후유증은 목하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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