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중산층’의 지배를 넘어…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물가와 금리 상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지만, 작년에도 사교육비가 크게 증가하여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재미 사회학자 구해근의 책 <특권 중산층 - 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국역본 2022년 11월)은 이에 연관된 하나의 중요한 분석을 내놓는다. 구해근은 부유한 나라 한국에서 어떤 새로운 계급 분화가 진행되어 중산층이 와해되고 재구조화하는지를, 특히 신흥 특권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조국 사태’에서부터 한동훈·정순신 등의 특권층이 벌인 ‘교육 농단’과 그 전후 맥락을 더 잘 볼 수 있다.

세대로는 586, 지역으로는 강남, 직업으로는 전문직 등으로 표상되는 그 계층은 라이프스타일, 교육 계급투쟁, 글로벌 전략 등을 통해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 이상의 전방위적이고도 새로운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투쟁의 무시무시한 효과가 부동산과 사교육 거품, 그리고 세계 최저의 출생률과 최고의 자살률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와 결부된 한국인의 정신상태와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여두었다. 그는 신흥 특권 중산층이 지극히 물질주의적, 가족이기주의적, 성공지상주의적이라 전제한 뒤, 그런 특권 중산층의 자식교육, 소비, 라이프스타일 등이 ‘일반 중산층’은 물론 전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모방욕을 부르지만, 그들이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견 모순도 내포한 진단에서 추출할 힌트가 많다. 특권 중산층의 행태와 문화적 장악력은 생존주의적 공포와 ‘욕망’에 허위를 칵테일한 것이다. 많이 배우고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서 살며 특권적 기회를 독점하는 자들 스스로도, 물질지상적이고 허위적인 욕망과 조장된 불안 때문에 정신없이 돈을 모으고 자식새끼들에게 물려주려 허겁지겁 산다. 그 정신적 공허와 빈곤이 ‘강남 문화’다. 그것은 ‘Yuji’처럼 지극히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명품과 표피적 성공과 ‘글로벌’로 치장된 휘황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빚어놓은 불안과 계급투쟁의 정치적·제도적 기제들은 무섭고 파괴적이다. 교육과 계급유지에 관련된 엄청나게 높은 경제적 문턱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의 신화의 허구를,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지도 존경하지도 않지만, 거부하지도 못하고 있다. 즉 이 동의와 모방은 자발적이고 내재적인 것이 아닌 일종의 강요 혹은 문화적 압력에 의한 것이며, 생존주의와 뒤엉킨 것이다.

그래서 상층의 영어유치원-국제학교-특목고-의대-SKY-글로벌 대학서열체제 외에도, 각 단계와 과정마다에 ‘차별’과 트로피를 심어놓았다. ‘을’과 ‘병’들은 마치 도토리 키재기하듯 경쟁과 차별의 문화를,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포와 분노로 따라 가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다른 주체성을 생성하거나 불안을 완화하는 ‘대안’을 만들지 못하면, 출생률이나 자살률에 대한 정책도 겉돌 수밖에 없고 K민주주의의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만약 이 사회가 ‘공동체’라면 부정한 부는 물론, (정당성의 외관을 걸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부나 지나친 소비에 대해서 분노해야 한다. 그런 과도함은 그 자체로 함께 사는 삶과 지구환경을 모욕하고 침해하는 사회적 병리이자 정신적 빈곤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짐승계 아니라 사람다운 공동체라면 ‘자식 사랑’도 한계나 규범이 있어야 한다. 가족이기주의를 ‘인륜’으로 혼동하면 조국·정순신·최순실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횡포도 정당화되고, 결국 ‘사회’는 증발한다.

그동안 우리 담론장은 능력주의 비판에 힘을 기울여왔다. 능력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핵심임이 사실이며, ‘공정’보다 불평등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다 옳다. 그런데 왠지 ‘현장’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상층부는 그 구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다수는 그 구조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허무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순신과 Yuji 등의 사례에서 보듯 이 사회의 특권층은 평범한 시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 부정, 억압과 전문 ‘기술’을 수단으로 삼고 있기에, 형식적(?) 공정의 가치조차 구현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공정’에의 열렬하고 계속적인 대중의 요청이 불평등 완화의 요구와 만나는 지점들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능력주의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구체적 정책과 경험의 공유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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