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 읽기를 위한 안내문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누군가 숫자를 인용할 때 우리는 이를 사실 그대로인 양 받아들이곤 한다. 과연 숫자는 항상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가? 드러난 숫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안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결과가 조만간 나올 것이다. 이를 읽어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연금이란 공적연금의 본질, 향후 70년이란 장기 미래를 추정한다는 것의 의미, 이러한 것에 대한 성찰 없이는, 제시되는 숫자의 의미는 오도될 수 있다. 안내가 필요한 이유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래 국민연금 재정 계산 결과는 흔히 국민연금기금 소진시점과, 미래 보험료율이라고 알려진 부과방식 비용률을 중심으로 발표된다. 듣는 이들은 국민연금기금이 없어지면 국민연금제도가 끝장나는 것처럼, 그리고 미래에 모두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온전히 연금보험료에 털어넣어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는 결과를 오독하는 것이며 재정계산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우선 국민연금기금은 재정추계에서 언급한 시기에 소진되지 않을 것이다. 5년마다 이 복잡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정기점검을 통해 제도개선 조치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향후 수십년 동안 국민연금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놓고 있을 때 발생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둘째, 설사 국민연금기금이 재정추계에서 언급한 시기에 혹은 그 이전에 없어진다고 해도 이는 제도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공적연금에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금이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보험료와 정부의 조세 재원이 매해 바로 노인들에게 연금으로 지급된다. 부과방식이라는 재정방식이다.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사연금상품이 아닌, 공적연금이므로 가능한 것이다. 공적연금은 기금 없이도 인구구조 급변, 공황, 전쟁을 겪으면서도 100년에 가깝게 지속되었다. 약간의 연기금은 사회 변화에 대한 제도 안정성을 보완한다. 기금소진 시기를 살펴보는 이유이다. 하지만 연기금 크기보다는 지출하는 시기 우리 사회 경제규모와 자원 동원능력이 결정적이다. 너무 큰 연기금 쌓기는 경기순환을 저해하며 금융시장 위험과 비용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부과방식 비용률은? 미래 한국인들은 무거운 연금보험료 부담을 떠안는 일개미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일까? 노인 비중이 40%를 훌쩍 넘기는 시기에도 국민연금 지출은 GDP의 10% 안팎이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이를 노동소득을 가진 이들이 나눠 부담했을 때의 몫이다. 이 비율이 40%를 넘는다면, GDP 중 노동소득이 25%에도 못 미치는 경제라는 의미이다. 몇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첫째, 생산 총량 중 보험료가 부과되는 분모, 일하는 사람들의 몫인 노동소득 비중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분배정의와도 관련된다. 둘째, 연금보험료의 사용자 부담률을 높이는 것이다. OECD의 공적연금 보험료 중 사용자 분담률은 약 3분의 2이다. 물론 자영자로 위장된 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셋째, 국민연금 재원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수십년 후 부의 창출 방식, 생산방식이 달라진다면 이에 부합하는 변화는 불가피하다. 프랑스는 이미 투자소득 등 모든 소득원에 사회보장분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고용, 노동소득 분배, 재정조달 방식 변화에 따라 가변적이다. 결국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에 부합하는 가장 중요한 부담지표는 GDP 대비 지출비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재정추계라는 것이 가지는 ‘추정’이란 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인구, 성장, 고용 등에 대한 70년짜리 가정을 결합시켜 미래에 던진 숫자가 추계결과이다. 이는 5년마다 움직이는 과녁이다. 그 방향과 흐름은 중요하지만 숫자의 의미는 절대적이지는 않다. 제도적 상상력을 막고 불안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재정추계 결과가 활용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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