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팔지 마라

김택근 시인·작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천재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이 있었다. 석전 박한영 스님(1870~1948)이다.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혔던 최남선·이광수·정인보·홍명희·변영만 등이 박한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박식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었다.”(최남선) “문장을 지을 때나 선리(禪理)를 펼칠 때에도 걸리거나 막히는 바가 전혀 없었다.”(정인보)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문인들도 박한영의 샘에서 물을 길어다 자신의 글밭을 적셨다. 김동리·이병기·조지훈·서정주·신석정·김달진 등이 박한영의 가르침을 받았다. “내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다”(서정주), “스승의 교훈을 나는 좌우명으로 삼아 살고 있고, 또 숨을 거두는 날까지도 가슴에 지니리라”(신석정). 또 독립운동가 이동녕·오세창·권동진·이상재 등과도 교유했다.

박한영은 동서의 종교사상에도 막힘이 없어 서학의 무분별한 유입에 사상적 응전을 했다. 근대 인문학의 개척자이자 교육의 선구자였다. 또 한시 600수를 남긴 시승(詩僧)이었고, 시상이 그윽하고 담백해서 묵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박한영은 시대의 큰 그릇이었다. 그 안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천하의 인재들도 담았다. 훗날 훼절한 제자들도 있었지만 스승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자신을 지킨 자도, 회유에 넘어간 자도, 이름을 팔아 영화를 산 자도 박한영만은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스님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스스로 명예를 탐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천재들이 박한영을 스승으로 모셨을까. 천재 중의 천재라서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함께 금강산에 들었을 때 스님(박한영)은 베옷에 떨어진 신을 신고 등에 짐을 지고 있었다. 이에 산승들이 얕보고 공경하지 않았다. 그중 누군가 ‘이분은 교정(종정)이시다’라 말했고, 또 다른 이는 ‘불교전문학교 교장이시다’라며 스님을 알아봤다. 이에 절 대중이 비로소 나와 영접하고 사과했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이러한 광경을 신문에 소개하여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기야 스님 스스로가 교정인 것을 모르며 또한 교장인 것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 것인가.”(정인보 <석전상인소전>)

정인보는 박한영 스스로가 나라의 최고 승려임을, 불교전문학교 교장임을 모른다고 했다. 박한영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았고, 체득한 지식에 매몰되지 않았다. 높이 올랐음에도 그 높이를 잊고 살았다.

노자는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다(大智若愚)”고 했다. “도를 위해서는 날마다 덜어내고, 배움을 위해서는 날마다 더해야 한다(爲道日損 爲學日益).” 당대의 천재들은 박한영의 덜어내는 삶에 놀라워하며 길을 물었을 것이다. 지식이 아닌 지혜에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엄혹한 시기에도 스스로를 다스렸던 스님들을 떠올려본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마저 지웠던 그들이 불교를 불교로 지켜왔다. 박한영처럼 가장 높이 깨쳤어도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가장 낮음이 가장 높음이니 곧 부처의 자리이다. 부처께서는 기적을 보여달라 조르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적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한 몸을 여럿으로 나누거나 벽을 뚫고 지나거나 물 위를 걷는 것 등이 첫째요,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알아차리는 것이 둘째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누구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의 논란만 부추긴다. 내가 제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세 번째니 그것은 스스로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는 기적이다.”

요즘 특별한 스님들이 많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이름이 번쩍거린다. 그들의 사자후가 일주문 밖에서도 들린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처를 팔아 권력과 영달을 얻고 있음이다. 자신을 높일수록 불교계 안팎에는 먼지가 일어난다. 머리에 빛이 난다, 신통력을 지녔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들은 모두 하찮다. 그저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을 숭배하고 있음이다. 자신을 부처보다 높이고 부처를 내세워 세상을 구하겠다 외치면 그것이 곧 매불(賣佛) 아닌가.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연등이 없어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특별함과 잘남을 멸(滅)하는, 그래서 부처가 오신 뜻을 새기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부처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알려주려고 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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