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역사성

정재왈 예술경영가·연세대 객원교수

앞으로 미국 뉴욕에 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16일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의 머제스틱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1988년 초연 이후 35년(총 1만3981회 공연) 만의 일이다. 이 작품을 보고 싶다면, 이제 뉴욕 대신 런던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은 아직 살아 있다.

정재왈 예술경영가·연세대 객원교수

정재왈 예술경영가·연세대 객원교수

1980년대 영국 뮤지컬 네 편이 브로드웨이를 강타했다. 뮤지컬 <캣츠>를 필두로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이 런던 세계 초연 후 2년 간격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뉴욕 브로드웨이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를 대표하는 뮤지컬과 연극의 본고장이다.

당시 브로드웨이는 옛 흥행작 재연의 리바이벌 공연에 의존하다 보니 침체 상태였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뮤지컬 네 편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뮤지컬 원조 논쟁에서 영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보는 미국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나, 흥행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이들은 나중 뮤지컬 ‘빅4’로 불리면서 현대 뮤지컬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캣츠>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등의 음악을 만든 ‘뮤지컬 황제’다. 지금은 다수의 극장 소유자로서 런던 극장가의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1986년 세계 초연 당시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에 세라 브라이트먼을 발탁해 일약 세계적 스타로 키웠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령 판타지를 가미한 <오페라의 유령>은 극중극으로 엮인 탄탄한 서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대와 의상, 잘 훈련된 목소리만이 감당할 수 있는 주옥같은 노래가 조화를 이룬 뮤지컬의 백미다. 35년 장수 뒤에는 이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

뮤지컬 명작 중의 명작으로서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관심은 일찍이 한국에서도 있었다. 1990년대 해외 나들이가 자유로워지면서 실물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명성이 전해졌다. 과연 언제 국내에서 직접 볼 수 있을까. 기대감이 정점에 오른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의 막이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올랐다. 웨버의 RUG를 설득해 어려운 라이선스(판권) 획득의 돌파구를 열고, 세계 초연 15년 만에 국내 공연을 이끈 사람이 설앤컴퍼니(현 설앤코) 설도윤 대표다.

공연은 각종 ‘기록 파괴자’라는 면에서 모든 게 역사였다. 7개월 최장 공연, 100억원을 훌쩍 넘는 최대 제작비, 24만명 최다 관객 동원, 200억원에 근접한 최대 매출 등 전에 없던 기록을 쏟아냈다.

숫자로 드러난 기록만으로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한국 공연사적인 의미에서 볼 때, 기록 이상으로 그 위상은 독보적이다. <오페라의 유령> 성공이 한국 뮤지컬 산업 부흥의 기점이 됐다는 면에서 특히 그렇다. 제대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기획·제작자들에게 용기와 도전의 자극제였다. 한국의 뮤지컬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오페라의 유령>은 그 앞과 뒤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지금 부산 드림씨어터에서는 <오페라의 유령> 국내 세 번째 라이선스 공연이 한창이다. 라이선스 공연은 원제작자로부터 공연에 관한 모든 권리를 사와 우리가 직접 제작한 공연이다. 이미 초연 때 시도한 방식으로, 이 또한 이후 유사한 형태의 전범이 됐다.

설 대표의 말대로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기획과 제작, 홍보, 마케팅 등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100회 이상 공연도 부산에서는 처음이라고 하니 기록 파괴자의 역할은 계속 진행 중이다.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 대유행이 잦아들면서 극장마다 관객이 몰려 공연계도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하지만 그새 저녁 귀가시간이 빨라지고, 해외여행이 느는 등 생활과 소비방식이 변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정도까지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미래 뮤지컬 시장의 가늠자로서 부산발 <오페라의 유령>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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