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선 윤석열 외교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시험대에 선 윤석열 외교

지난 1년간, 집권 이후 윤석열 정부의 외교 분야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문제에 집착하고, 급변하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에 올인했다. 미국이 제시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역사의 바른 선택’ 혹은 시대정신 위에 서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결기도 보여주었다.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삼각공조를 완벽하게 복원해 한국 외교를 정상화했다는 칭찬도 받았다. 일본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받았고, 유럽·중동 등지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하는 초대장이 밀려오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이 시기가 미·중 간 전략적 협력의 시대였다면 이러한 성과는 더할 나위 없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업적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시기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세계는 다극화의 추세로 나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일에 대한 협력 강화는 중·러에 대한 적대의 강화로 해석된다. 미국식의 이분법적 국제정치관을 수용한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충돌을 감내할 의지와 최종 승리에 대한 낙관적인 확신에 가득 차 있어 보인다.

윤석열 외교는 전통적인 한국 외교의 방정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 및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에 돌입하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공감대가 존재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 방정식을 과감히 깨고 한국 외교의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모든 외교적 언어와 노력을 쏟아부었다.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선으로서의 십자군 역할을 기꺼이 수용할 태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와도 갈등과 충돌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이러한 결단과 과감성에 일각에서는 환호를 보내겠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깊은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한국은 그간 안미경중(安美經中)으로 요약되는 2중 동맹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최고의 안보 동맹이었다. 중국은 한국의 경제를 지탱해주는 제1 무역대국이자 흑자 대상국으로 경제동맹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한·중 경제는 상보(相補)적이었고, 중국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한·중 간에 경제 구조는 이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적 관계, 특히 한국이 점차 열세에 처하는 관계로 전환하고 있다. 동시에 미·중 경쟁하에서 윤석열 정부의 친미정책은 한·중 갈등과 충돌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국과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일각에서는 현재 한·일관계, 한·미관계를 돈독히 했으니 다음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기대는 이제 최소화하고 충돌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국내적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 시도할 것이다. 윤 대통령 자신도 언급하였듯이 점차 어려워지는 한국 경제는 중국의 경제가 활성화되면 상응하여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기대도 가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대한 최대 도전은 명백하게 한·중관계에서 올 것이다. 3연임에 성공한 중국 시진핑의 외교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중심의 국제질서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고 다극화된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진할 것임을 공식화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실제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포위하기 위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통해 진영 간 상호 적대적 대결을 유발시키고 있다면서 중국 역시 피하지 않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친미 노선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한·중관계는 위험 완화(derisking)가 아닌 위험의 재강화(rerisking)와 충돌 가능성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 탈동조화(디커플링) 정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중국의 한국 정책은 중국이 대만을 억제하기 위해 그간 전개한 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즉 군사적으로 한국을 포위하고(圍韓), 정치 외교적으로 한국을 괴롭히고(困韓),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窮韓)하게 하는 정책을 종합적이고 집요하게 전개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금명간에 한국에 대해 보다 적대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다. 중국은 현재 한국과의 접촉선을 정리해 나가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 금년 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방중은 모두 어려워 보인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열강의 외교정책을 보면, 중국과의 대결 정책보다는 중국의 위험을 관리하는 위험 완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 등과 같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 정치·경제·안보 연대와 협력을 대폭 확대하기 시작했다. 2022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보고서(The World divided)에 따르면 중·러를 지지하는 국가들의 수가 미·서방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수를 추월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한국은 대중·대러 양면 전선의 선두에 깃발을 나부끼며 홀로 서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역사적 확신을 넘어서야 할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친미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실익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시간이다. 중국과 러시아발 위험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에 대한 복안도 보여주어야 한다. 중국과의 적대 강화나 완전한 디커플링은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에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 장차 전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할 글로벌 사우스, 서구 경제권보다 더 커질 브릭스 경제권에 대한 접근력도 반드시 확보해 나가야 한다. 국제관계는 정글의 세계이며, 모든 강대국은 보복에 능하다. 스스로 외교·안보·경제적 자강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언제라도 방기의 위험에 처하는 것이 약소국의 운명이다. 위정자는 과정과 도덕적 동기가 아니라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불행은 우선적으로 국민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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