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외교의 시대, 폭풍 속의 한국 외교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치열한 외교의 시대, 폭풍 속의 한국 외교

한국 외교가 당혹스럽다. 윤석열 외교는 문재인 정부의 대중 굴욕외교와 한·미 동맹에 대한 홀대를 비판하면서 중국에 대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당당한 외교를 표방하였다. 미·중 전략경쟁의 국면에서, 그간 국내에서 논의되어 오던 대응 전략 중 한·미 동맹을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자는 헤징전략론과 미·중 간에 균형을 추구하는 균형외교론을 과감히 폐기하였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이는 미·중 전략경쟁이 점차 신냉전의 양상을 띠면서 제로섬 게임적인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전제를 수용하는 것이다. 중간의 회색지대에 머무는 것은 양측으로부터 방기당할 개연성이 높고, 국익을 추구할 공간은 극히 제약된다는 인식이다.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당연히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는 하지만, 그 시장을 공략할 기술과 설비는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내의 강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쟁 성노예나 징용공 문제에 있어서 일본에 전적으로 양보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희망하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현 친미(親美)와 극중(克中) 정책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의 저명한 여론 평가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2020년대 결과에 의하면, 한국민들의 대중국 혐오감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지어 미국의 경제적 미래와 대중 경쟁의 승리에 대한 신뢰가 미국인들보다도 높다. 이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높지만, 미래의 세계 경제는 중국이 주도할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하고 있는 유럽 주요국가들의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여론의 향배 속에서 한국의 어느 정당이나 보수와 진보 정치인 할 것 없이 한·미 동맹의 강조와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중, 강 대 강 국면으로 치닫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급격한 친미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몰입했던 북한 중심의 정책과 대중 유화정책에 대한 안티테제 성격이 강하다. 동시에 새로이 미·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공급망의 재구성에서 한국이 배제될 개연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고 본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크다. 일본은 최근 미·중 전략경쟁 시기 미국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과거 문제로 번번이 발목을 잡는 한국과 국제무대에서 탈동조화를 추진할 개연성이 크고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간 한국 외교안보 정책은 보수와 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다음 두 가지의 묵계에 기반하였다고 본다. 첫째는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 한·미 동맹을 가장 중시했다는 것이다. 친중정부라 비난받는 문재인 정부도 2017년 6월 그간 보수정부조차 꺼리던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식문서에 담았다. 두 번째는 중국, 러시아 등 이웃 강대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는 전제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기존 한국 외교·안보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깼다. 친미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갈등과 충돌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 이러한 정책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한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중국과 갈등과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지난 6월 불거진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한국 대외정책에 대한 무례한 언급은 대사 개인의 일탈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는 중국 지도부 차원의 대한국 정책 변화를 시사한다. 시진핑 지도부는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국가 부주석 왕치샨, 정치국 서열 3위였던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파견하였고, 양제츠, 왕이, 친강 등 외교 최고 지도부들로 하여금 한국 측과 접촉하게 하였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적인 외교행보 이후 중국은 관망과 관리 위주의 대한국 정책에서 탈동조화, 억제와 압박 정책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비우호적 태도는 물론 북·중관계를 강화할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고통을 안겨 줄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부산 세계 박람회의 개최도 불확실하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의 오만함과 압박에 강하게 반발할 것이며, 시진핑 체제 역시 보복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한·중 양측은 강 대 강의 대립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맹방의 투트랙 전략과 대조

혼란스러운 점은 독일, 프랑스, 호주, 스페인 등은 미국이 제시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공공연하게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적이라 표방했던 일본조차도 실상은 투트랙 전략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 관계는 실익을 챙겨왔다. 최근 4월에는 일·중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고, 일·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도 의제에 오르고 있다. 미국 역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시진핑 독재자 발언으로 논란이 크지만, 중국과 대화와 협상에 나서고 있다. 미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역시 중국과의 완전한 탈동조나 적대관계 설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중국과의 전면적 갈등과 충돌은 미국이나 서유럽 어느 정권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이들의 경제안정을 돕고 정치적 안정성을 담보해 줄 역량을 지닌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과 탈동조화가 아니라 위험관리를 표방하는 근거이다. 추후 적어도 미 대선 전까지는 미·중 고위급들 간의 왕래와 대화, 협력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미국과 주요 맹방들은 중국 위협에 대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동시에 이익의 균형을 취하고 있다. 뜨거운 심장과 더불어 냉정한 뇌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친미 정책의 강화와 미국의 이분법적 국제관을 전폭 수용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이제 이 혼란의 시기를 돌파해야 한다. 사상의 일관성이나 도덕군자가 아니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핵심적인 자질이다. 정글과 같은 국제정치의 장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제 ‘치열한 외교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화려한 듯하지만 고독하게 분투하고 있는 윤석열 외교가 이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도록 국민적인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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