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티발레단’은 어떨까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예술단체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꼭 그 분야의 형편이 나은 건 아니다. 매사가 그렇듯이 양보다 중요한 것은 질이다. 과장된 얘기지만, 예술가 숫자와 단체가 맞먹어 보이는 분야도 있는데 그렇다고 형편이 좋은가. 그렇진 않다. 예술단체의 수와 관련해서 유독 열세를 보이는 곳이 발레다. 고난도 기술을 연마한 무용수의 수급에서 한계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국내의 발레단 수는 확실히 적다. 고정급이 가능하고 전막 발레를 소화할 수 있는 직업무용단이라야 고작 세 곳 정도다. 국공립에 해당하는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 민간의 유니버설발레단을 꼽는다. 형편은 훨씬 그만 못하나, 그래도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는 중소규모의 발레단이 많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열악한 처지다.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현실은 그런데도 요즘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발레다. 어렵고 문턱이 높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발레 공연에 팬덤이 형성되고, 한국 무용수들의 눈부신 활약 덕에 세계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 얼마 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이 국제적으로 권위가 있는 ‘브누아 드 라 당스(무용의 영예)’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했다. 한 해 동안 공연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데, 고전발레의 본고장인 주최국 러시아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창작 발레 <미리내길>로 상을 탔다. 순수 국산이란 의미여서 더욱 값지다. 1991년 상이 제정된 이래 한국 무용수로 다섯 번째다. 하루아침에, 특출난 한 개인이 이룩한 성과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축적한 한국발레의 저력이 발휘된 결과다.

이런 걸 종합해보면, 한국발레는 확실히 중흥기에 들어섰다. 한창 상승 분위기가 무르익은 이때, 적절한 양육의 환경이 좀 더 보강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정도 그게 뒷받침된다면 국력에 맞게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발레 강국’, 그거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발레가 반드시 예술선진국의 지표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양식화한 클래식 장르로서 발레는 그만한 가치 정도는 지녔다. 클래식은 깊고 넓게, 그리고 오래 변치 않는(timeless) 힘을 가졌다.

이참에 서울시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서울시티발레단(SCBC)’ 창단이다. 오래전 묻어놓은 생각인데, 강미선의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이 제안을 공론의 장(場)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공립 발레단을 하나 만든다면 서울시만 한 조건과 역량을 갖춘 지자체는 드물다고 보여 서울시에 제안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시장의 마인드나 비전과도 통하는 바가 있어 보여, 그걸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발레단을 품고 있으니 제외다.

서울시에는 이미 많은 산하 예술단체가 있다. 정확히 서울시 산하 세종문화회관의 소속단체로서 거의 전 장르가 망라돼 있다. 서양식 장르부터 전통까지 두루 갖췄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재단법인으로 독립해 독자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들어있어야 할 것 같은, 꼭 있어야 하는 장르가 빠졌는데 그게 발레다. 그간 빠진 연유는 알 바 없으나 실상은 그렇다. 서울시향 같은 독립법인으로 서울시티발레단이 생긴다 해도 일단 장르 중복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민감한 선결 조건 하나는 이미 충족된 셈이다.

공공 예술단체 하나 만드는 거 만만한 일, 물론 아니다.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이 들어가고,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이 마련돼야 한다. 새로 만드는 단체라면 비전도 차별적이어야 하고, 파급효과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한 복잡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중흥기에 있는 한국발레의 발전에 힘이 실리면서 ‘국제 문화도시’ 서울의 품격과 이미지를 높이는 차원에서, 나는 시립 ‘서울시티발레단’ 창단을 깊이 논의할 만한 문화예술계의 의제로 던진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류는 창의적이며 우수한 K콘텐츠 파워의 총합이다. 인프라 못지않게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 앞으로 유망한 클래식 콘텐츠로서 한국발레가 차지할 몫은 더욱 커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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