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15일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주관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23주년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또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적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강군만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는 행사 사진 연단에는 ‘강한 국방,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라고 적혀 있었다. ‘힘’과 ‘평화’가 큰 글씨로 강조됐다. 힘은 빨간색, 평화는 파란색으로 칠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힘이 세다. 한국 사회는 정권의 도덕적 감각에 크게 좌우된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이렇게 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정세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힘에 기댄 평화’에 가깝다. 외교적 메시지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 사회 내부로도 투사된다. 힘이 없다면, 힘 있는 곳에 기대고 줄 설 것. 2023년 대한민국의 도그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평화는 이상적 상태지만, 이를 추구하는 기준이 ‘힘’이라면 사회의 작동원리가 단순해진다. 힘은 기본적으로 ‘위계’를 상정한다. 힘이 있는 쪽과 힘이 없는 쪽을 가르고 힘이 있는 쪽이 ‘평화’를 갖는 방식이다. 힘이 없다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폭력적 방식이다.
힘으로 찍어누른 가장된 평화
되돌아보면, 윤석열 정부의 메시지는 뚜렷하고도 명확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다루는 방식도 ‘힘에 의한 평화’였다. 화물 수송 방식의 구조적 문제는 무시한 채 공권력이라는 ‘힘’을 이용해 ‘평화’를 가장했다. 갈등의 대상을 ‘갑을’ 혹은 ‘상하’의 위계로 가른 뒤 한쪽을 억누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편’과 ‘다른 편’이 갈리고 ‘다른 편’에 대해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대상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진다.
첫 번째 거부권이 행사된 양곡관리법의 과정도 비슷했다. ‘벼농사’는 비효율적인 국가 경제의 ‘짐’으로 평가됐다. 벼농사를 둘러싼 노동구조의 복잡한 역사적 변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간호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도 같은 흐름이 반복됐다. 의사와 간호사의 충돌에서 힘이 있는 의사가 이기는 방식으로 평화가 강제됐다.
이후는 거침없다. ‘평화’는 갈등을 억지로 억누른 상태이고, ‘귀찮고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규정됐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시민단체는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었고,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반국가세력’도 등장했다. 듣기 싫은 소리는 ‘가짜 뉴스’나 ‘괴담’으로 정리했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이 있는 척’에 대한 박멸로 이어진다. ‘힘’을 누릴 자격에 대한 검증을 통해서다. 고소득 강사들을 상대로 고급차, 명품시계를 저격하면서 세무조사로 응징한다. 실업급여에 대해서는 ‘시럽급여’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너희가 어떻게 감히’라는 시선이 느껴진다. 최저임금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2.5% 인상에 그쳤다.
힘을 누릴 자격에 대한 ‘우대’도 빠지지 않는다. 자녀의 결혼에 따른 증여세 한도 증액 논의는 힘이 있는 자들의 평화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쏟아지는 재난과 사고의 모든 책임은 몰인정한 ‘법’적 해석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음도 다시 확인됐다. 처벌은 힘없는 실무자들을 향한다.
배제 공포가 낳은 극단적 일탈
문제는 ‘힘에 의한 평화’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힘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배제에 대한 공포는 극단적 일탈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배려와 공감은 사치다. 우리 아이에 대한 티끌만큼의 손해에도 강력하게 저항해야 하는 ‘민원’은 어쩌면 이 시대의 생존윤리가 됐는지도 모른다.
신림역의 범인은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생각으로 칼을 휘둘러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지난 25일에 이어 26일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살해 예고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악다구니가 극단을 향한 결과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을까. 며칠 새 쏟아진, 보호받지 못한 피해를 향한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힘에 기댄 평화’를 탈출하기 위한 초속 11.2㎞의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