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뉴콘텐츠팀장이 됐다. 오랫동안 열정을 쏟았던 스포츠부를 떠났다. 한 해 전, 프로야구 두산 조성환 코치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만년 하위팀이던 한화로 옮긴다는 소식에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조 코치는 지난겨울 두산 복귀를 결정한 날 밤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뉴콘텐츠팀장이 되고 ‘R’을 배우기로 했다. 오랜만의 코딩을 위해 꽤 비싼 무접점 키보드를 샀다. 준비는 장비와 동의어라고 배웠다. ‘함수’와 ‘객체’의 개념을 다시 떠올리며 깜빡이는 커서에 명령어를 한 자 한 자 적어 넣었다. 데이터 정렬 방식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며 움직이는 그래프를 만드는 데(까지만) 성공했다.
1년이 조금 넘게 흘렀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왔다. 이번에는 영상 편집으로 정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 14일 ‘디지털 리포트 2023’을 발표했다. 이 리포트의 대한민국 현황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79%, ‘신문’으로 뉴스를 보는 비율은 겨우 15%밖에 되지 않는다(중복응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에서는 유튜브가 압도적이다.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보는 비율은 53%로 지난해보다 9%포인트 올랐다. 페이스북은 4%포인트 감소한 10%였다. 유튜브는 대세가 됐다.
준비는 장비와 동의어라고 배웠지만, 무접점 키보드와 영상 편집을 위한 애플 ‘맥북’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컸다.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10배나 되는 가격 차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회사에서 준 기사 작성용 노트북에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를 설치했다.
방통위 장악의 뚜렷한 ‘빅 픽처’
유튜브 채널 ‘편집하는 여자’는 구독자 수가 40만명이 넘는다. ‘킹기본을 배우기 위한 기초 강좌’부터 시작했다. 화면을 열고, ‘시퀀스’를 만들고, 영상 소스를 가져오고, 그걸 ‘V’로 시작하는 레이어에 올리고, 오디오 파일을 가져와 A로 시작하는 레이어에 올린다. 오디오 파형을 확인하면서 ‘싱크’를 맞춘다. 아, 그래서 촬영 때 슬레이트를 치는구나.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재생이다. 면도날 아이콘을 눌러 한 땀 한 땀 영상을 조각내면서 편집이 시작된다. 2명이 등장하는 스튜디오물 영상을 위해서는 카메라 3대가 필요하다. 2명을 찍는 ‘원샷’용 카메라 각 1대씩, 둘이 함께 등장하는 ‘풀샷’용 카메라 1대. 이 영상 3개를 층층이 쌓아올리면서 편집을 시작하려니, 문서용 노트북이 견디지 못한다. 역시 ‘용서’를 택해야 했나 후회되지만, 고금리에다 경기침체까지 겪고 있는 시대에 소비는 금물이다. 결국 풀샷 영상 하나로만 편집하기로 했다. ‘내용이 중요하지, 화면의 화려함이 중요하겠냐’는 정신 승리다.
유튜브 콘텐츠는 자막이 필수다. 컷 편집과 자막 편집은 차원이 다르다.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 2023’에는 인공지능(AI)이 오디오를 자막으로 변환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아직 한국어는 갈 길이 멀다. 무슨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는 한 줄 한 줄을 일일이 고쳐 써야 한다. 6시간을 갈아 넣어 20분짜리 유튜브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여전히 조잡하지만, 가슴이 웅장해진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정신 승리를 강조하지만, 과연 이 콘텐츠를 몇명이나 보게 할 수 있을까.
새삼 깨달았다. 뉴스는 자본과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신문사는 텍스트 콘텐츠를 생산한다. 텍스트 콘텐츠의 생산 비용이 급감하면서 ‘차별화’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영상 콘텐츠에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자본과 노동이 투입된다. 방송국만 가능하다. YTN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97만명, SBS 뉴스는 348만명, MBC 뉴스는 341만명이다. 앞서 살폈듯 한국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은 53%나 된다.
한국인 절반, 유튜브 통해 뉴스 봐
정부·여당이 방송통신위원회 장악을 위해 칼을 가는 이유는 뚜렷하다. 과거 ‘9시 뉴스’를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수십억 조회 수를 기록하는 방송사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어하기 위함이다. ‘포털’을 향한 압박으로 텍스트 뉴스를 몰아내고, 53%가 소비하는 유튜브를 손에 쥐면 ‘블랙리스트’ 따위를 만들 필요도 없다. ‘학폭 논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에 들어간 건 이를 위한 ‘빅 픽처’다.
틈틈이 ‘컨트롤+S’를 누르며 한 땀 한 땀 편집을 하다 생각한다. 지금 이 영상으로 ‘자유’를 외치지만 ‘압수수색’과 ‘구속’으로 언론은 물론 자본과 시장까지 제어하려는 시도를 저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힘없는 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더 갈아 넣는 수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