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모 기관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과거형으로 서술한 것은, 하루 전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태풍 카눈이 한국에 상륙하는 날 저녁에 강연이 있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도서 지역의 특성상 가는 사람도, 부른 사람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루 전날 담당자께 전화가 왔다. “작가님이 오시기도 힘들고 가시기도 힘들고, 도민들도 태풍이 오는데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도 그렇고, 취소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연 당일에 메시지가 왔다. 예약한 숙소에 입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 1박2일 일정이니까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7만원까지 숙소비 지원이 된다고 해서 강의할 기관 근처에 바다도 보이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을 잡았다. 숙소에 전화해서 환불이 되는지 묻자, 당일 환불은 안 된다고, 그러나 태풍으로 인한 것이면 숙박 앱 고객 센터에 전화해 보라는 답을 들었다.
숙박 앱 업체에 전화해 환불이 되는지 물었다. 태풍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된 것이면 비행기가 결항된 것을 서류로 입증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비행기는 결항되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행사가 취소되었으니 제주도에 갈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업체에서는 그러면 환불이 불가하다고 했다. 하루 전이었으면 전액 환불을 받고 취소할 수 있었을 텐데, 늦게 대응한 내 잘못이다. 언제나 치밀하지 못한 나. 괜히 태풍을 핑계댈 것도 없다. 이런 건 ‘김민섭 비용’ 같은 것이지.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제주도 바다가 보이는 그 호텔 방은 오지 않을 나를 위해 하루 비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누구라도 가서 자는 게 좋지 않은가. 태풍 때문에 하루 더 있게 된 사람이라든가, 여행 갔으나 숙소를 잡지 않은 사람이라든가, 굳이 외박할 일이 없는 제주도민이라든가. 비워져 있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가서 자면 그 사람도 나도 행복하지 않겠나. 오후 2시니까 충분히 그런 사람 하나쯤 나타날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태풍으로 제주도 강의가 취소되었으니 내가 예약한 숙소에서 누구라도 가서 자면 좋겠다, 먼저 메시지 주신 분께 무상으로 양도하겠다, 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이거,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 같은 건가요!” 몇년 전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가려다가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혀 가지 못하게 됐고, 그때도 환불은 어렵다고 했고, 대신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오면 양도하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 만에 19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나 그에게 티켓을 양도한 일이 있다. 그때도 이 티켓을 누군가에게 주면 그 사람도 나도 이 티켓의 가격보다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여권의 이름이 같아야 한다는 조건 같은 게 없었기에 금방 몇개의 메시지가 왔다. 그중 가장 빨리 연락 준, 남편과 함께 여름휴가를 계획했다가 태풍으로 취소했다는 제주도민께 양도되었다. 그가 사례하겠다고 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대신 저의 책 한 권을 읽어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태풍으로 행사가 취소되었고 숙소는 환불이 되지 않았으나,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고 누구도 사과하거나 상처받는 일 없이,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다. 업체 관계자가 연락이 와 환불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하루 전 환불을 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니 괜찮다고 답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태도라는 것은 여기에 닿아 있다. 어떤 일이든 타인을 상상한다면 함께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고 확장시킬 수 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 당신에게 보낸 작은 응원이 당신을 돌아 더 크게 퍼져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