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싸움과 민주당의 싸움은 분리해야 한다

박영환 정치부장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이 대선 패배 후 인천으로 가 초선 배지를 달고 여의도 정치에 입성해 제1야당 대표를 맡은 지 1년이 됐다. 평가가 이어지겠지만 이 대표가 받을 1년 성적표는 낙제 수준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제 민주당이 정부·여당 견제와 수권 능력 제시라는 제1야당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는 이는 적다.

박영환 정치부장

박영환 정치부장

일본이 수백만t의 원전 사고 오염수를 30년 넘게 바다로 흘려보내려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반대 한번 못한다. 독립 영웅들은 좌파 이력을 찾아 역사에서 지우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은 복권을 추진한다.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고위 당국자 하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제1야당의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

민주당 내부를 보면 왜 그런지 알 만하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3월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에 이어 두 번째 기소다. 첫 번째 기소 때는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며 방탄으로 맞섰지만 이번에는 이 대표 스스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해놓은 상태라 묘수 찾기에 바쁘다. 비회기에 영장을 청구하라, 체포동의안 표결을 무산시키자, 이 대표 스스로 가결을 요청하라 등등 민주당은 연일 이 대표 수사 문제로 바쁘다. 우울한 민주당의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이 대표 체제 1년간 민주당발 뉴스의 상당 부분은 대표 사법 리스크와 관련됐다. 검찰 비판, 당내 분란, 방탄 논란. 언론도 시민들도 이젠 지겨울 정도다. 검찰이 정기국회에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총선을 앞둔 추석 밥상에도 사법 리스크가 오를 판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딸이 “윤석열 정말 친일에 극우에 해도 너무하지 않아요? 이 나라가 어찌 될지”라고 할 때, 삼촌이 “아이고, 이재명은 자기가 뭔데 검찰에 안 나가나. 민주당도 글렀다”라고 맞받으면 대화 끝이다.

이 대표는 당선 후 “믿음직한 대안 정당으로 국민이 흔쾌히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권의 일방주의와 야당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해도 168석을 가진 민주당이 야당 역할 한번 속 시원하게 한 기억이 없다. 뭐 하나 성사시키지도, 뭐 하나 막지도 못했다. 여론의 평가는 차가울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30%대 초·중반에 갇혀 여당 아래에서 횡보하고 있다. 이 대표 취임 직전인 지난해 8월 4주차 34%였던 지지율은 지난 8월 4주차에도 32%를 기록했다. 정부의 헛발질이 이어져도 야당이 누리는 반사이익은 제로다. 취임 초에 들리던 위기론은 더 커졌다.

이 대표나 민주당은 억울할 수 있다. 대선 후보였던 제1야당 대표 수사를 1년 반이 넘게 끌며, 이렇게 수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검찰은 없었다. 검찰이 씌우려는 혐의가 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 전체가 대표 리스크에 끌려다니는 상황을 방치해도 될 정도로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검찰의 부당함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사법 리스크를 잘라내야 한다. 지난 17일 네 번째 소환조사를 위해 포토라인에 선 이 대표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에 비유했다. 신을 속였다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반복적으로 영원히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처럼 검찰의 탄압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대표는 이제 스스로 지기로 한 그 형벌에서 민주당을 풀어줘야 한다. 이 대표의 싸움과 민주당의 싸움은 분리해야 한다. 그것이 ‘그놈이 그놈’이란 회의론을 극복하고 30% 넘는 무당층의 관심을 다시 받는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단의 정치, 반전의 정치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러다간 질 판인데 총선 공천 때 쓸 도장만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무기력한 정당이란 비난을 받는 데는 민주당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총선에서 살아남는 데만 관심이니 이 대표 체제 1년에 대한 건전한 토론과 반성은 찾기 어렵다. 혹시나 공천을 못 받을까 지도부에 쓴소리 한번 못하는 이들, 12월 퇴진이니 옥중 공천이니 하면서 본인 공천은 이 대표에게 보장받고 총선은 간판만 바꿔 치르겠다는 속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독주에 무기력한 민주당을 보고 밥 슈럼 전 민주당 전략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역사의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돌아보고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물을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물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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