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과 너무 친한 한국 사회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지난 주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머그샷(범인식별용 사진)을 찍은 게 화제가 됐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형사 기소를 당한 것도, 이런 사진이 찍힌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지폐와 동전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점점이 박아놓은 미국인들인 만큼 충격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역대 45명의 대통령 중 구속이나 투옥은 고사하고 형사 기소를 당한 것도 처음이라니, 현직 포함 13명의 대통령 중 3분의 2 이상이 감옥 신세를 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선 신기한 느낌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일본은 어떨까? 일왕이야 사법처리는커녕 비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존재니 논외로 치고 내각총리대신, 즉 총리를 살펴보자. 1948년 아시다 히토시(芦田均) 총리가 쇼와전공사건(昭和電工事件)으로,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된 적은 있으나 감옥신세는 면했다. 1885년 내각제도 창설 이래 지금까지 64명의 총리 중 옥살이를 한 이는 떠오르지 않는다. 도쿠가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에는 반정(反正)으로 탄핵당한 왕(연산군·광해군)도 권력투쟁으로 귀양살이를 한 임금(단종)도 있었지만,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將軍)이 그런 험한 꼴을 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조선의 유력 대신들 중 하옥되거나 귀양 간 경우는 쉽게 떠오르는데, 막부의 총리 격인 로주(老中)가 그런 일을 당했었는지 확인하려면 한참 뒤져야 할 거 같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은, 정확히 말해 한국 정치는 감옥과 너무 친하다. 한국 대통령들은 미국과는 달리 화폐에는 얼씬도 못하는 반면, 머그샷 따위를 가볍게 넘어 감옥에 간다. 재임 시 행적으로 감옥에 간 분들도 있고, 대통령 되기 전 민주화운동(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따지고 보면 만민공동회로 잡혀 들어갔으니 여기에 해당될 듯)으로 투옥된 양반들도 있다. 대통령뿐 아니다. 정치인, 기업인들 중에서도 ‘별 단 사람’들이 즐비하다. 재벌총수들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감옥을 다녀오곤 한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죄수복을 입고 있는 장면은 참 낯설 것이다.

물론 정의를 실현하려다 투옥된 것과, 부정한 일을 해서 가게 된 감방행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옥고(獄苦)’나 ‘옥바라지’라는 한국어가 상징하는 것처럼, 그런 구분이 뒤섞여, 감옥행이 한 인간의 사회적 커리어에 결정적 타격이 되지는 않는, 심하게 말하면 ‘큰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회적 심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별’이 큰 자랑이었고 정치적 자산이었다. 감옥은 정의 집행의 장소라기보다 불의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니 비록 거룩한 일을 하다 감옥에 간 게 아니라 하더라도 수감자에 대한 거부감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영화 <공공의 적2>에서 뇌물을 받아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 차량에 타던 정치인(박근형)이 하늘을 바라보며 “아~~이 나라가 걱정이야”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조선시대의 원격감옥행이라 할 수 있는 유배도 정작 당사자의 명예에 큰 대미지가 된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유배지를 관할하는 지방관리는 물심양면으로 죄인을 배려했고, 현지 주민들도 죄수 바라보듯 하지 않았다. 정의의 배반자라기보다는 체제의 불운아로 여겨지기 십상이었고, 그 불운이 가셔 화려하게 복귀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이런 상황은 세상의 불의에 대한 비판 정신이 치열하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법치, 체제권위 같은 게 여전히 확립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구치소에서 나오면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며 “선거 개입에 절대 굴복하지 말자!”는 문구를 게시했다. 트럼프도 사법당국과의 인연을 ‘별’로 삼으려는 걸까. 각 신문에 느닷없이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왔길래 이리저리 해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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